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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낭만 하루..
문화

포토에세이 : 낭만 하루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5/19 17:01 수정 2022.05.19 17:04
‘헌트’ 비경쟁부문 미드나잇스크리닝 초청

암막 커튼을 떼고 나니 일찍 눈이 떠졌다. 베란다의 화초가 지쳐 보여 물을 준다. ‘여왕의 눈물’이 고고하게 꽃대를 올렸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저장 공간이 부족하단다. 공간 확보가 필요하다. 사용하지 않는 앱들을 먼저 제거했다. 그다음 작업이 사진이다. 내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은 용량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클라우드에 보관하기로 한다. 전송되기 전 사진들을 정리해본다. 정리를 수시로 하지 않으면 그것도 노동이 되고 만다.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될 것을 삭제하다 한 장의 사진에서 멈 춘다.
지난겨울 영일대해수욕장에서 찍은 것이다. 이른시간에 서둘러 출사를 나갔지만, 막상 차에서 내리려니 주저되는 날씨였다. 아침거리는 음산할 정도로 조용하고 추웠다. 공중을 부유하다 소나무에 걸린 비닐봉지가 깃발처럼 퍼덕였다. 출사를 접으려 카메라를 가방에 넣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왔다. 사람이 반가운 아침이었다.
그들은 검은색 패딩에 비니를 쓰고 원을 만들었다. 몸을 접었다 폈다 늘렸다 오므렸다 하는 동작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취했다. 흐느적거리되 흐트러지지 않는 기이한 동작들이 어어졌다. 얼떨결에 관객이 되어 그들이 만든 무대를 감상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연으로 상상한다. 일개미의 역할에 우직한 나를 위한 누군가의 깜짝 이벤트 같은것. BGM으로 깔릴 음악까지 선곡해본다. 물론 그들은 나의 감상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동작이 다 끝나서야 셔터를 눌렀다. 그 느낌을 남겨놓아야 될것 같아서였다.
한장의 사진에서 좋았던 기억이 소환된다면 나에게는 귀한 것이 된다. 출근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이 울린다. 일개미로 살아야 될 시간이 되었다. 어느 생물학자는 일개미를 잎개미라 부른다지. 잎을 나르는 일개미들의 일사불란함이 마치 행위예술을 하는 것 같았단다. 일개미라 하면 왠지 안쓰러워 잎개미라 부른다는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일개미처럼 일하는 사람보다는 잎개미 같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낭만적인 행위를 하는 느낌이다. 서둘러 신발을 신는다.
당장 달라지지 않을 권태로운 현실에 ‘상상’과 ‘억지’를 보태며 오늘도 나는 잎개미의 하루를 시작한다. 낭만 하루를.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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