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살인'…그 극한 상황을 지켜보며
"딸을 보육원에 보내느니 죽이고 나도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30일 무려 13년 만에 얻은 귀한 딸을 스테인리스 통에 빠뜨려 익사시킨 김모(40·여)씨가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김씨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한 다음날 생후 53일 난 딸을, 물 가득한 스테인리스 통에 집어넣고 집을 빠져나왔다. 전날 부부싸움을 하며 남편이 "이혼하고 딸은 내가 키우다 안 되면 보육원에 보내겠다"는 말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씨가 남편에게 남긴 글엔 "○○는 내가 좋은 데로 데려갈게"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보육원보다 죽음이 딸에게 더 좋은 선택지라고 김씨는 판단한 것일까. 생후 53일된 딸의 죽음은 스스로의 의사와는 전혀 반하는, 김씨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여 후인 지난 7일.
이번엔 생활고를 비관하던 이모(58)씨가 암 투병을 하던 아내와 고등학생 딸을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의 유서엔 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내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이씨에게 생활고는 삶을 포기할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에 살해된 딸 역시 암 투병 중인 엄마를 원망했을지는 의문이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딸에게도 생활고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었을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극한 상황까지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오류다.
죽음을 결심하고 가족을 죽이는 이들은 그것이 가족의 고통을 덜기 위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것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그 겉에 덧씌운 자신의 고통뿐이다. 가족은 함께 죽는 게 아니라 영문도 모른 채 타인의 고통에 의해 일방적인 죽임을 당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 법원은 올 초 큰 논란이 됐던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 피고인 강모(48)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강씨의 폭력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짐작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고등학생 딸이 겪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어땠을까. 또, 생후 53일된 갓난아이에겐 젖을 주던 엄마가 자신을 물속에 집어넣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터.
13년 만에 얻은 갓난 딸을 익사시키고 결국 검거된 김씨는 며칠 동안 식사도 거른 채 후회와 슬픔에 잠겨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분노와 고통을 넘어 또 다른 인격체인 딸아이의 삶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더라면 김씨의 늦은 후회도 없었으리라는 진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은 다르다.
비록 가족일지라도 자신의 고통만으로 타인의 고통을 짐작하고 그 삶을 함부로 끝낼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