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푸르기를 희망한다. 소나무가 언제나 푸르러 보이는 이유는 한 가지에 삼대가 푸른색을 띠며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안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공존을 모색하며 인내하고 버티기 위한 분투가 한창이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런 치열한 과정은 들어오지 않고 어제 모양이 오늘 모양과 같아 보일 뿐이다. 마치 달과 물이 어제의 그것과 같지 않은 것처럼 소나무도 사실은 날마다 다른 존재인데 말이다."(156쪽)
"수분을 하지 않은 꽃의 꽃잎은 웬만한 비나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분이 끝난 꽃의 꽃잎은 역할을 완수했기에 나무에 매달려 있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이제 꽃잎은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지상에서의 아름다움을 뒤로한 채 꽃잎은 마르고 부서져, 자신을 피어나게 해주었던 나무의 양분이 되기 위해 대지로 떨어진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꽃의 의지에 의해서이다."(164쪽)
30년지기인 두 여성이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의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냈다. 이명희 건국대학교 교양교육센터 교수와 정영란 산림교육전문가가 그 주인공이다.
10대 시절부터 함께해온 두 사람은 40대 후반이 되어 함께 책을 썼다. 시 쓰는 인문학자와 숲 읽는 자연과학자가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12가지 식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연과학자는 꽃이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된 경위를 진화론적인 시각으로 보면서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인간 삶의 방식을 읽어낸다. 반면 인문학자는 꽃이나 나무에 연관된 문학이나 예술의 이미지를 통해 삶의 아픔과 허무함, 그리고 향기를 읽어낸다.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살아온 두 사람은 가진 것을 공유하면서 누린 배움의 시간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서로를 재발견하고 상대방의 영혼에 닿아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소통은 비어 있는 씨방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씨방이 어느 날 시야로 들어왔다면, 그것은 내 삶 속에 빈 공간이 보이는 시간이다. 그것이 여유로 느껴지든, 허무로 느껴지든 간에 앞으로 비운 채로 세상을 담아 바람처럼 살 것인지, 다른 세상에 세를 놓아 즐거운 동거를 할 것인지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출생과 성장을 도왔던 착한 씨방은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 수많은 꽃으로 한때 야단법석이었다면, 이제 아무도 보지 않는 씨방은 또 다른 잉태를 준비하는 공간,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의 방이다."(178~179쪽)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일 수 없기에 뿌리를 땅 속에 묻고 온갖 지혜를 짜내었을 것이다. 운명을 탓하며 옆자리를 아무리 탐해본들 소용없고 오로지 신이 주관할 영역이라는 사실을 식물들은 일찌감치 알았을 것이다. 한자리에 선 채로 사랑을 하고 자식을 갖고 또 그들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식물들은 제자리에서 매개자를 부르기 위해 향도 만들고 모양도 맞춰보고 유혹의 미끼로 꿀도 만들어본다. 바람 불어도 막아줄 어미도 없고 목이 말라도 어느 누가 물 한 바가지 가져다주지 않는다. 식물의 삶은 이 같은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한 생명체일지도 모른다."(243쪽)
"꽃은 누가 알아주든 못 알아주든 자신의 계절에 맞게 꽃을 피우고 소명을 다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피어난 꽃뿐 아니라 지고 난 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려 한다. 꽃 중에 제일은 분명 사람이다."(이명희)
"우리들의 꽃 이야기가 친구가 나에게 내밀었던 그러한 손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너에게 꽃이 되고 너도 나에게 꽃으로 다가온다. 나무와 꽃과 풀들로 인해 애씀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정영란) 260쪽, 1만4000원, 열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