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고종의 명을 받고 울릉도에 들어간 검찰사 이규원은 뜻밖의 광경을 보고했다. 섬에 머물던 백성 대부분이 전라도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흥양, 지금의 고흥 사람이 가장 많았다. 그들은 봄이 오면 돛에 바람을 받고 노를 저었다. 남해를 돌고 동해를 거슬러 천 리 뱃길 끝의 경상도 섬에 닿았다. 나무를 베어 배를 짓고 미역을 따고 고기를 잡았다. 가을이면 새로 지은 배에 미역과 말린 생선을 가득 싣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라가 섬을 비워 둔 시절이었다. 그 먼바다에 우리 땅의 숨결을 이어 간 것은 전라도 어부들의 발길이었다.
고흥 거금도 앞바다에는 작은 바위섬이 하나 있다. 금산면 오천항에 서면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이는 섬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섬을 ‘독섬’이라 불렀다. ‘독’은 돌(石)을 이르는 방언이다. 울릉도 동쪽 먼바다에서 어부들은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섬을 보았다. 고향의 그 섬을 떠올려 같은 이름을 붙였으리라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다. 돌섬은 독섬이 되었다. 1900년 대한제국 칙령에는 돌 석 자를 쓴 ‘석도’(石島)로 적혔다. 1906년 울릉도 심흥택 군수의 보고서에 이르러 ‘독도’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어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그렇게 나라의 문서로 건너갔다.
그보다 앞선 17세기 말,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따졌다. 그는 경상도 동래 사람이었다. 경상도 사람이 지켜 낸 바다에 전라도 어부들이 배를 댄 셈이다. 오늘 그 섬을 지키는 경비대원과 등대원들도 전국 곳곳에서 왔다. 독도는 그렇게 여러 고장의 사람들을 한 바다로 불러 모은 섬이다.
그 이름이 지금 세계의 지도에서는 온전하지 못하다. 이달 필자는 미국 지명위원회의 지명 목록을 찾아 보았다. 이게 왠 일인가. 전라도 고흥의 독도는 ‘Dokdo’라는 이름과 한글 ‘독도’로 또렷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동해의 독도는 그 이름은 여전히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였다. 별칭 가운데에는 영어로 ‘개의 섬’처럼 읽히는 ‘Dogdo’까지 있었다. 정작 한국의 공식 명칭인 ‘Dokdo’는 없었다.
2008년 여름, 그 목록에서 독도의 소속이 ‘주권 미지정’으로 바뀐 일이 있었다. 온 국민의 목소리로 일주일 만에 되돌려졌다. 그때 우리는 소속을 되찾은 데 안도하느라 이름까지는 살피지 못했다. 이름을 건네준 섬은 제 이름을 지켰다. 그러나 이름을 물려 받은 섬은 아직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이름은 존재의 처음이자 끝이다. 우리 윗세대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의 아픔으로 그것을 몸소 기억한다. 이름을 잃는 순간 얼굴과 내력이 함께 흐려지기 때문이다. 땅의 이름도 다르지 않다. 이름이 흐려지면 주인이 흐려진다. 주인이 흐려지면 사실도 비틀리기 쉽다. 섬의 이름은 그 섬을 품은 바다의 이름과 함께 기억된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Dokdo in the East Sea of Korea’라는 한 줄을 바르게 쓰면 된다. 아이의 지구본에서 그 이름을 함께 찾아보면 된다. 그 이름에 고흥 어부들의 숨결이 배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된다. 경상도의 아이에게도, 전라도의 아이에게도.
화개장터에는 지금도 장이 선다. 섬진강 이쪽과 저쪽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국밥 한 그릇을 나눈다. 말씨는 달라도 웃음은 같다. 140여 년 전 동해에도 그런 자리가 있었다. 경상도의 섬이 전라도의 말로 불렸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독도는 어쩌면 두 고장이 함께 지은 이름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 섬에는 동쪽에서 해가 뜬다. 그 햇살은 서녘 고흥 앞바다의 작은 독섬까지 고루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