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배 KTF 해양영토전략연구소장
"수천 명이 한꺼번에 춤을 추면 잔디가 다 망가집니다. 복구 비용은 누가 책임집니까?“
2012년 10월, 부산 영도 국립해양박물관 앞 마린축구장에서 열릴 '나라사랑 독도사랑 페스티벌'을 준비하던 때였다. 구청 담당 과장이 난감한 얼굴로 찾아왔다. 주말마다 그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축구 동호회의 항의가 거세다고 했다. 인조잔디가 훼손될 수 있고, 행사 뒤 쏟아질 쓰레기는 누가 치우느냐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독도를 사랑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정작 남의 소중한 운동장을 망가뜨린다면 그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해 10월 13일, 사단법인 나라사랑 독도사랑이 마련한 축제에 부산 시민과 참전용사 가족 등 5천여 명이 모였다. 한국해양대학교 학생과 중고등학생 1,500여 명이 독도사랑 플래시몹을 펼쳤고, 독도 골든벨 OX퀴즈가 이어졌다. 운동장에는 음악과 함성이 가득했다. 멀리 동해의 독도가 그날만큼은 영도의 축구장 한가운데로 찾아온 듯했다.
무대 밖에도 주인공이 있었다. 재향군인회 여성회원들은 천막 아래에서 음료를 건넸고, 해병대전우회는 곳곳에서 질서를 지키며 안전한 진행을 도왔다. 무대 위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무대 밖에서는 묵묵히 땀 흘리는 손길이 이어졌다. 맡은 자리는 달랐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시상식을 앞두고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멀리 동해의 독도를 사랑하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신나게 뛰어놀고 앉았던 자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간다면, 그러면서 독도 사랑을 외치고 상을 받는다면, 그 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학생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행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함성으로 가득했던 운동장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는 놀라울 만큼 깨끗했다. 쓰레기봉투는 한쪽에 가지런히 모여 있었고, 과자 봉지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걱정했던 잔디도 멀쩡했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을 살피러 나온 구청 공무원은 말끔한 그라운드를 한참 둘러보았다고 한다. 축구 동호회의 항의도 더는 없었다.
14년이 지난 지금,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플래시몹도 시상식도 아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운동장이다. 그날 독도는 동해가 아닌 그 축구장에 있었다.
올해 10월 25일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가 제정된 지 126년이 되는 날이다. 1900년 고종황제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편하고 그 관할에 '석도', 곧 오늘의 독도를 명시했다. 이틀 뒤 관보에 실린 짧은 조문이었다. 나라의 앞날조차 장담하기 어렵던 열강의 압박 속에서도 동해의 작은 섬을 잊지 않고 문서에 새긴 것이다. 일본이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 편입을 주장한 1905년보다 다섯 해 앞선 일이다.
황제의 칙령과 학생들의 쓰레기봉투는 전혀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같은 마음이 흐른다. 지켜야 할 것을 잊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독도라는 이름 앞에서 쉽게 뜨거워진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나올 때마다 분노하고 ‘독도는 우리 땅’을 목청껏 부른다. 그 마음도 소중하다. 그러나 멀리 있는 섬을 사랑한다면서 내 발밑의 운동장과 이웃의 불편에 무심하다면, 그 사랑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나라사랑은 구호의 크기가 아니라 머문 자리의 깨끗함으로 증명된다. 그날 쓰레기봉투를 든 학생들도, 음료를 건네던 손길도, 질서를 지키던 청년들의 발걸음도 모두 한마음으로 독도 편에 서 있었다. 독도는 동해에 있지만, 독도를 지키는 사람은 우리 곁에 산다.
독도교육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땅을 지킬 만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날의 학생들은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다. 퀴즈의 정답은 잊었더라도, 떠난 자리는 깨끗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126년 전 대한제국은 독도를 문서에 남겼고, 14년 전 영도의 학생들은 독도 사랑을 깨끗한 잔디밭에 남겼다. 그 사랑이 진짜인지는 동해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