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을 맞아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문서를 작성하고 공공기관에 제출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입법이 추진된다.
점자를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수단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표현하는 독립적인 문자로 인정하자는 취지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권과 의사표현권을 보장하기 위한 '점자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 2건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법안의 핵심은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작성한 문서도 일반 활자 문서와 동등하게 접수·처리하도록 법적 의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공공기관 등이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문서나 자료를 제공하는 데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반면 시각장애인이 직접 점자로 작성한 민원서류나 자료를 제출했을 때 이를 일반 문서와 동등하게 인정하고 처리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법적 근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실제 시청각장애인인 조원석 손잡다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기자회견에서 관공서를 방문할 때마다 점자로 작성한 문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아 동행인에게 개인정보를 공개하고 업무 처리를 부탁해야 했던 경험을 전했다.
동행인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민원 처리를 거부당한 사례도 있었다.
점자 문서가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행정서비스 이용이 제약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점자법 개정안은 공공기관 등이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작성한 문서와 자료를 제출하면 일반 활자 문서와 동일하게 접수·처리하도록 의무화했다.
점자로 작성됐다는 이유만으로 접수를 거부하거나 일반 활자 문서를 별도로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점자 문서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필요할 경우 점역·교정사 등 전문인력을 활용하거나 관련 기관·단체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도 담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은 시각장애인이 점자로 문서나 자료를 작성·제출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차별금지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점자 문서의 해독·변환 등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 다른 사람이 제출한 문서와 동등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두 법안은 점자 사용에 대한 선언적 권리를 넘어 공공기관의 문서 접수와 행정 처리 과정에서 실질적인 권리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고 행정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26년 11월 4일 송암 박두성 선생이 세상에 알린 한글 점자 '훈맹정음'은 시각장애인의 문자생활에 획을 그은 역사적 성과다. 문자를 읽고 쓰며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각을 직접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사회 참여를 이끈 문자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해 김예지 의원은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문자"라며 "읽을 권리를 넘어 쓰고 표현할 권리까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공지능(AI)과 전자문서가 일상화된 시대에도 점자로 직접 작성한 문서는 일반 활자 문서와 동등한 효력을 온전히 갖춰야 한다"며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입법적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훈맹정음 반포 100년. 이제 과제는 점자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점자로 쓴 문서가 사회와 행정에서 온전히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문자 사용권을 실질적인 권리로 정착시키기 위한 국회의 입법 논의가 주목된다. 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