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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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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의 시선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11/20 16:47 수정 2022.11.20 16:49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골목 모퉁이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 자꾸 눈길이 간다. 도로 쪽 가지들만 잘려 나무 모양이 기울었다. 코너를 도는 차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나. 다행히 올해는 잎이 제대로 물들었다. 볕은 고르게 내렸나 보다. 아침부터 바람 소리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강한 바람에 은행잎이 무더기로 떨어져 날린다. 딸아이가 다음 주면 온다는 데… 그때까지 버텨주면 좋을 것인데… 라며 욕심을 내본다. 십일월의 바람은 반나절 만에도 풍경을 바꿔버린다. 나무의 모습은 드러나게 변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더러 잡힌다. 그러니 집안에만 있을 수 없다. 구수리 숲을 찾아 가을과 겨울쯤의 나무를 보고, 해안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익숙한 곳이지만 늘 다른 느낌의 장소들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변화는 익숙한 곳에서 찾기 쉽다.


준비해간 커피를 마시려 해안가에 차를 세웠다. 강한 바람일수록 파도를 대범하게 만든다. 평소 얕고 잔잔하던 해안에 방둑까지 파도가 치솟는다. 파도가 밀려 나갈 때마다 드러나는 물체에 집중한다. 흡사 파도와 맞서 싸우기라도 하는 것 같다. 까짓거, 물에 잠기기밖에 더하겠냐는 식이다.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하는 이의 담담한 표정까지 느껴진다. 눈앞의 두려움까지 초연하게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할까. 아직도 먼 바다 물결은 드센데 말이다.
잠시 물이 빠지자 바위에 고정된 철제 다리가 보인다. 등받이 없는 의자 같기도 하다. 누가, 왜, 어떤 용도로 바다에 만들어 놓았을까? 만약 의자라면…? 의자였으면 좋겠다.
바다가 잔잔한 날의 의자를 상상한다. 마을 어르신이 해초를 뜯다 허리를 펴고 앉을 휴식처, 데이트 나온 젊은이들이 앉아 포즈를 취할 포토 존, 달빛 환한 밤에 찰방찰방 발을 담그고 앉아 흡족한 웃음을 웃게 될, 그리고 맨발의 자유를 누군가에게 전송시키는 장면도 그려본다.
고정된 의자는 바다를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이미 그 자리에 놓여 있기에. 하지만 일출의 벅참과 밤하늘의 평온을 누리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하루하루가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애써 견디며 기다린다. 바다가 반반할 어느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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