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石波). 두 글자가 마음에 오래 걸렸다. 돌과 파도.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오지만, 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독도는 정확히 그런 섬이다. 수천 년 동안 두드려지면서도 끝내 그 자리를 지켜온 섬. 아호를 받아 든 날, 나는 한동안 그 두 글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았다. 학자로서 독도를 연구해온 세월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그 아호는 비단 한 학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독도 그 자체가 돌과 파도의 이름이었다.
독도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독섬'에서 출발해야 한다. 울릉도 사람들에게 ‘독'은 외롭다는 뜻이 아니었다. 발길에 채이는 거친 ‘돌’을 가리키는 일상의 언어였다.
돌로 이루어진 섬, 돌섬. 사투리로 독섬. 독도는 외롭게 홀로 떠 있는 섬이기 이전에, 동해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단단한 돌섬이었다. 이름 하나에 섬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담겨 있다. 거창한 역사서가 아니라 어부의 입에서, 해녀의 손에서, 울릉도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자라난 이름이었다.
국어학자 방종현 선생은 독도라는 명칭이 바로 이 독섬에서 비롯되었다고 고증했다.
우리말 독섬을 한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뜻을 빌려 석도(石島)가 되었고, 다시 소리를 따라 독도(獨島)로 적게 되었다. 독섬→석도→독도. 이름 하나가 흘러온 담대한 물결이다. 표기는 바뀌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뿌리는 하나였다. 돌섬. 단단하고 거칠고 파도에 지지 않는 섬.
이 계보가 왜 중요한가. 1900년 10월,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재가한 칙령 제41호가 있다.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고 관할 구역을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로 명확히 규정한 이 칙령에서 석도(石島)가 바로 독섬이다. 울릉도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던 돌섬이 대한제국의 공식 행정 문서에 올라앉은 것이다. 독도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사료다. 민중의 말이 역사가 되었고, 그 역사가 영토를 지탱했다. 이름의 뿌리를 알면 칙령의 석도가 왜 독도인지, 왜 이 사료가 국제 무대에서 강력한 근거가 되는지 비로소 선명하게 보인다.
많은 국민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 자신 있게 외친다. 그러나 왜 독도라 부르는지, 칙령의 석도가 무엇인지, 독섬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구호는 분노를 일깨울 수 있다. 그러나 단단한 지식과 논리만이 상대를 설득하고 끝내 영토를 지킨다. 분노는 뜨겁지만 짧다. 논리는 차갑지만 오래 간다. 일본이 끊임없이 역사 왜곡을 다듬고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논리를 심어가는 동안, 우리가 구호만을 외친다면 그 싸움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것이다.
한국의 이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경북의 바다를 내려다보며 살아온 사람들이, 독섬과 석도와 독도로 이어지는 역사의 맥락을 자신의 언어로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독도를 배우는 단계를 넘어, 독도를 설명하는 시민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료와 언어적 근거를 바탕으로 세계를 차분히 설득하는 품격 있는 시민. 그것이 오늘 이 연재가 독자에게 청하는 한 가지 부탁이다.
석파(石波). 돌과 파도.
석(石)은 영토다. 빼앗길 수 없고 옮길 수 없으며 어떤 파도에도 녹지 않는 것. 파(波)는 역사다. 멈추지 않고 밀려오고, 때로는 거세게 할퀴고 지나가지만 결국 돌의 형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돌이 있기에 파도는 부서지고, 파도가 있기에 돌은 더 단단해진다. 독도라는 이름 안에는 그 오랜 싸움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이름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싸움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는 일이다.
아호를 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파도는 그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돌도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독도는 오늘도 동해의 시린 파도를 맞으며 흔들림 없이 서 있다.
이름을 읽는 자가 섬을 안다. 섬을 아는 자가 끝내 섬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