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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개암 김우굉 선생 한글 연시조 詩碑 제막식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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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 김우굉 선생 한글 연시조 詩碑 제막식 가져

박종근 기자 입력 2016/10/17 15:42 수정 2016.10.17 15:42
-조선중기 문신인 개암 김우굉 선생의 선비정신 기려-
▲     © 운영자


 상주시(시장 이정백)에서는 10월 15일 오전 11시 중동면 회상리 맷골에서 유림단체와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중기 문신인 개암 김우굉(開巖 金宇宏) 선생이 지은 한글 연시조인 개임십이곡 시비(詩碑) 제막식과 개암정(開巖亭) 중창(重創) 준공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정백 상주시장, 김종태 국회의원, 김현권 국회의원(의성김씨), 시의원, 상주향교 전교를 비롯한 유림, 속수서원과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개암 김우굉 선생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 문하에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明宗21年(1566) 별시 문과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과 동반 급제 후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광주목사(光州牧使)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으신 분으로,
 선조 18년 (1585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중동면 회상리 맷골의 낙동강가에 개암정(開巖亭 : 이곳의 바위가 입이 벌어진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개암이라고 호(號)로 삼음)을 짓고 낙동강을 벗삼아 선비의 강호지락(江湖之樂)을 노래한 ‘개암십이곡(開巖十二曲)’을 지으셨다.
 ‘개암십이곡(開巖十二曲)’은 현재 8곡(曲)만이 전해지고 있는데,
   첫 번째 곡은 ‘개암(開巖)’이라는 제목으로 지어졌다.
 문노라 버리바회야 엇디여 버런다萬頃蒼波水 다마시랴 버런다 우리도人間飜覆을 몬내 우서버런노라 - 開巖 -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 “마치 큰고래가 바다를 들이마시는 듯하다”고도 하고, “대장부가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듯하다”고도 한다고 한 것은 동서분당 이후 동인과 서인이 치열한 정권 다툼을 벌였던 당대 상황을 비판한 것으로 선비의 곧은 지조를 엿볼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개암십이곡은 서울대학교 권두환, 조해숙 교수가 개암공의 7대손 소암공(鎭東 1727~1800)의 필사본 추모록에서 開巖十二曲에 대한 기록을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이 시에 대한 평가는 선생께서 자신의 인생관을 바탕으로 은유적 현실비판과 선비의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읊음으로써 문학적 완성도를 높임은 물론, 향촌문화로서의 時調 전승 과정 및 창작시기와 그 발전 과정을 시사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연시조라는 점에서 국문학사상 중요한 意義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정백 상주시장은 “시비(詩碑)와 개암정은 신낙동강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상주시의 관광인프라로 낙강범월록(洛江泛月錄)을 비롯해 우리나라 문학사적으로 기념비적인 문학의 산실로 상주시의 위상을 드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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