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영국 왕실지리학자였던 피터만은 1858년 발행한 ‘피터만 지리학 회보(Petermanns geographisc
he Mitteilungen)’ 에 울릉도를 다줄레 섬, 독도를 호르넷(Hornet)이라고 표기되었고, 독도 명칭 아래에 괄호로 올리부차(Oliwuz)와 메넬라이(Menelai)라고 표기했다.
당시 섬의 존재가 의심스러웠던 아르고노트 섬은 점선으로 표시되었다. 1868년 제임스 와일드(James Wyld) 지도는 호르넷 섬과 더불어 3개의 섬을 그리고 "아르고노트호가 방향을 잃었다"라고 표기하여 아르고노트 섬은 실존의 섬이 아니라고 표기했다.
서양지도 중에서 ‘다케시마(竹島)’, ‘마쓰시마(松島)’라는 전통적인 호칭을 사용한 대표적인 지도는 1840년 시볼트의 일본지도이다.
독일인 시볼트는 에도시대의 일본지도에 조선동해안에 전통적으로 ‘다케시마’, ‘마쓰시마’가 위치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잘못된 서양지도를 인용하여 실존하지 않은 아르고노트 섬을 ‘다케시마’, 다줄레 섬을 ‘마쓰시마’라고 추가했다.
여기서 시볼트 지도는 아르고코트 섬의 위도에 대해 기존의 ‘북위 37도32분’를 ‘37도25분’으로 수정한 것으로 볼 때 기존 지도의 오류를 수정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이 제작한 지도 중에 1867년 시볼트 지도를 그대로 모방한 ‘대일본연해약도’는 ‘다케시마’, ‘마쓰시마’를 표기하고 ‘다케시마’가 실존하지 않는 섬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다케시마’를 점선으로 표시했고, ‘마쓰시마’는 지금의 울릉도임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시했다.
1870년 하시모토 교쿠란(橋本玉蘭)의 ‘대일본사신전도’에는 ‘다케시마’와 ‘마쓰시마’ 모두가 지금의 ‘울릉도’임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표기했고, 지금의 독도에도 ‘리앙쿠르도’라고 표시했다.
이처럼 1870년 전후하여 조선 동해에 위치한 두 섬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현재의 울릉도 명칭이 ‘다케사마’에서 ‘마쓰시마’로 바뀌는 등 섬 명칭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처럼 에도시대에는 도해금지령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정확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지도에 정확한 경위도 표기없이 ‘다케사마’ ‘마쓰시마’ 두 섬의 존재를 표기했다. 도항금지령이 내려진 사이에는 서양인들이 동해의 두 섬을 발견하고 서양지도에 다양하게 표기했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국교회복으로 도항이 가능해지면서 민간인들 중에 쇄환정책으로 비워서 관리하던 조선의 울릉도를 발견했다고 하여 ‘마쓰시마’ 또는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자가 있었다.
1876년 7월 부토 헤이하쿠(武藤平學)는 "조선의 울릉도가 아닌, 새로운 섬 마쓰시마(松島)를 발견했다!"고 하여 ‘마쓰시마개척지의(松島開拓之議)’를 신청했고, 1877년 1월 도다 타카요시(戶田敬義)는 “다케시마(竹島)도해면허”를 신청하여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했다. 그러나 중앙의 메이지정부는 민간인들의 오류를 수정하여 막부시대의 ‘돗토리번 답변서’를 바탕으로 전통적 명칭의 ‘마쓰시마’(독도), ‘다케시마’(울릉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1877년 3월 20일 태정관 문서에 "죽도(울릉도)와 그 외 1도(송도; 독도) 우리나라(일본국)와 무관함을 심득할 것(日本海內竹島外一島地籍編纂方伺)"이라고 하여 두 섬 모두 일본 영토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 1877년 6월 8일 도쿄(東京)부지사는 도다 타카요시가 신청한 죽도(울릉도) 도해면허의 발급을 거부했다. 중앙정부가 ‘다케시마’(울릉도)와 ‘마쓰시마’(독도)가 조선영토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볼트의 잘못된 ‘일본지도’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실제로 1880년 9월 일본해군성 아마기호(天城艦)가 일명 "마쓰시마(松島; 울릉도)"를 조사한 후 "새로 발견했다는 마쓰시마는 조선의 울릉도이며, 그 밖의 ‘다케시마(독도)’는 하나의 암석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보고헸다.
그리고 1883년 시점에 ‘이노우에 문서’에 "마쓰시마(松嶋) 일명(一名) 다케시마(竹島), 조선에서 울릉도라고 부르는 섬(朝鮮稱 鬱陵島)에 도항하는 사람은 처벌받는다."라고 했다.
이처럼 도항금지령으로 울릉도의 정보가 부정확하고 잘못된 일부 지도의 영향으로 민간인들이 일명 ‘다케시마’‘마쓰시마’라고 호칭하지만, 그 섬은 조선영토의 울릉도이라고 했다.
이처럼 메이지정부는 이 시기에 민간에서 울릉도의 호칭이 혼돈스러웠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에도시대의 돗토리번 답변서를 바탕으로 동해의 두 섬인 ‘다케시마’와 마쓰시마‘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고, 또한 아마기호의 조사에 의해서도 최종적으로 조선영토임이 재확인되었기 때문에 한 번도 중앙정부는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에 대한 혼란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일본정부는 ‘태정관지령’과 ‘기죽도약도’로 울릉도와 독도가 명백하게 한국영토임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일본은 “잘못된 서양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시볼트의 일본지도의 ”다케시마(竹島; 아르고노트 섬, 실존하지 않는 섬)-마쓰시마(松島; 다줄레 섬, 실제의 울릉도)“의 영향으로 울릉도를 ’마쓰시마‘라고 호칭하여 섬 명칭의 혼란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지도에서 동해상에 그려진 두 섬은 모두 ’마쓰시마‘(松島)로서, ’태정관지령‘의 “다케시마(竹島 ;울릉도)와 그 외 1도(外一島 ;독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에서 “다케시마(竹島)”는 원래 울릉도이고, “그 외 1도()”도 ’마쓰시마‘(松島)이므로 울릉도이라고 사실을 날조하는 해괴망측한 방식으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