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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숭경하는 그녀..
문화

포토에세이:숭경하는 그녀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6/30 18:11 수정 2022.07.31 14:42

그녀가 꺼내놓은 반찬들은 투박한 바다의 맛이다. 그래서 더 반갑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다잡게 하는 ‘인생 반찬’ 같은 거. 나이가 들수록 자랄 때 먹었던 음식에서 큰 위안을 느낀다. 엄마의 손맛이 깃든 그 음식들이 생각날 때가 더러 있다.
오늘이 그랬다.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내 컨디션을 알아차리는 그녀다. 나를 위해 그녀가 처방 음식을 내놓았다. 미역줄기 무침, 진저리 무침, 파김치, 보리멸치 볶음…. 그녀의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들이다. 보기만 해도 양푼을 꺼내 비비게 만들고, 잃었던 입맛과 가라앉은 기분을 다잡게 한다.
보리멸치 볶음! 쌉싸름하고 비릿함을 고추장으로 감싼 귀한 반찬이다. 보리가 필 때만 잡히는 멸치라 해서 보리멸치란다.
확실한 어원은 아니지만 아주 낭만적인 이름이다. 내가 보리멸치 볶음에 반색한 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어린 시절, 잠결에 맡던 밥 냄새에 대한 그리움이거나, 중년이 되어버린 아쉬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를 공감하는 그녀다. 내 추억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친구. 오래도록 너무 익숙한 사람이나 사물이 차지한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기 십상이다. 그녀가 병상에 있던 시간이 그 자리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다행히 그녀의 긍정적인 정신력과 의지력으로 이제는 웃을 수 있다. 서로의 일상에 끼어드는 일은 더 빈번하다. 훗날, 함께 추억 할 지금과 미래가 주어짐에 감사한다.
그녀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어. 내 친구 오빠가 잡는 가자미인데, 잡아서 바로 손질해서 진공포장 한다 아이가.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지 몰라. 한 팩에 만원. 어? 다섯 팩 가져다 달라고? 알았데이. 고맙데이.”
그녀의 ‘선한 공짜 영업’이 또 시작되었다. 품목은 아주 다양하다. 절에서 만든 된장, 간장, 동창생이 하는 제 철 농산물들, 아는 언니 형부가 하는 벌꿀, 친정 동네 아주머니들의 돌미역, 아마도 사돈네 팔촌의 이웃 것이라도 도울 수 있는 거라면 기꺼이 나설 것이다. 그녀의 ‘선한 공짜 영업’은 늘 호황이다.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귀찮은 내색 없이 기꺼이 나선다.
행여 그녀의 건강에 무리가 될까 싶어 잔소리하는 내게 그저 웃는다. 서둘러 집을 나서는 그녀의 여름 원피스 아래로 겨울 레깅스가 보인다. 몸에 나타나는 불편한 증상들도 그녀의 일상으로 받아들인다며 말한다. 그런 그녀를 나는 숭경한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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