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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어떤 날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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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어떤 날의 파도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11/03 16:59 수정 2022.11.03 17:02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순한 놈이 온 줄 알고 만만하게 여겼다. 사흘째 되는 날에 열이 나고 뼈마디마다 나의 세포들이 바이러스와 전쟁을 할 때, 걸걸거리는 기침을 하면서 목에 손수건을 감을 때야 결코 순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일주일을 약에 취하고 잠에 취했다. 무기력증이 내 몸에 진을 치고 머문다. 몸을 누이는 곳마다 그 아래로 무언가 끌어당기는 것 같다. 무겁게 닫히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며 껌뻑이지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엄밀히 말하면 파도에 밀리는 자갈의 비명이다. 파도에 휩쓸려 자갈이 멍들어 내는 신음 같은 것. 오랜 시간동안 갈리고 물에 씻기고 구르고…. 그 반복의 시간이 만들어낸 둥근 모양의 잔돌이 여전히 구른다. 먼 데서 부터 몸체를 불려 달려드는 파도는 시커먼 거품을 물고 덮친다. 움찔하여 다리를 오므린다.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파도가 밀려 나간 것인가 싶었더니 속보라는 말이 반복해서 밀려온다.
텔레비전 채널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라는 단어들이 언급되고 아수라장이 된 거리가 보인다. 한기가 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안감은 아이들의 별다름 없는 일상을 확인해야 사라질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의 딸을 떠올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아이와는 연락이 되었냐고, 몇 시간이 지나서 연락이 닿았다는 말에 안심한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늘어나는 상황을 지켜보며 먹먹해지는 마음에 이리저리 채널만 돌린다. 안전대책에 안일했던 누군가의 책임전가 하는 모습에 그들의 무기력이 부끄럽다. 나서지 못하고 혼잣말하는 나 자신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깊이 애도하는 마음에 잠시 눈을 감는다. 자갈이 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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