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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기대의 정석..
문화

포토에세이 : 기대의 정석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3/09/10 17:51 수정 2023.09.10 17:54

월포로 가는 동안 상상한다. 가끔은 상상이 옛 기억과 혼돈되기도 한다. 그물에 걸려 파닥이는 물고기와 비늘이 떨어져 날리는 장면이다. 어릴 적 멸치잡이 후릿 배를 본적이 있으니, 아마 기억 쪽이 가까울 것이다. 이웃 마을에는 후릿 배가 있었다. 멸치 떼가 동네 안쪽으로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 두 척이 나란했다. 어부들은 노동요에 맞추어 그물을 힘껏 털었다. 그물코에 걸린 멸치들은 반동으로 튕겨 나와 그물 안에 모이고, 비늘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날렸다. 부유하던 물고기의 비늘들이 영화의 슬로 모션 장면처럼 남았다.
후릿그물로 고기를 잡는 시범 행사가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해수욕장 번영회가 주최한 관광객 유치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후릿그물은 강이나 바다에 그물을 넓게 둘러치고 여러 사람이 끌어당겨 물고기를 잡는 전통 방식이다. 도착하고 보니 얕은 곳에서 이미 그물을 당기기 시작한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너덧 살 꼬마가 눈을 비비며 아빠 손을 잡고 걸어온다. 고기잡이를 보고 싶은 아빠의 발걸음은 바쁘고, 아이는 바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다 갈매기를 보자,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모래 위를 뛰어다닌다. 꼬마의 관심사는 고기잡이가 아니라 갈매기다. 그물을 잡고 있던 사람들의 간격이 좁혀진다. 그런데 뭍 가까이 당겨진 후릿그물에는 모래만 딸려 왔다.
진행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물에 구멍이 나 있다고. 모터보트의 스크루에 그물이 감겨 찢어진 것 같다고. 올해의 행사는 여기서 끝낸다며 머리를 숙인다. 소란 속에 꼬마는 여전히 갈매기를 쫓아 뛰어다닌다. 나는 집으로 차를 돌린다.
집안이 고요하다. 아침밥을 차려 놓고 아이의 방안을 들여다본다. 이름을 부르다 말고는 식탁으로 거실로 서성인다. 아이가 집에 온다는 말은, 늘 기대로 부푼다. 함께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나열한다. 전화기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도 분명 들떠있었다. 2박3일 동안 엄마랑 꼭 붙어 있을 거라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저 피곤함이 문제일 뿐. 집에 온 편안함으로 모처럼 꿀잠을 자는 중이겠거니. 그러면서도 흐르는 시간이 괜히 야속하다.
기대의 순간에는 실망도 수반됨을 기억하자. 그것이 기대의 정석이다. 이미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 것에 만족하자. 기대로 보낸 들뜬 며칠이 바로 선물임을 알아차리자. 거기에 누리게 되는 뜻밖의 시간은 보너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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