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을 강타한 역대 ‘최악의 산불’ 사태로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정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을 두고 여야가 속도를 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30일 여야는 한목소리로 산불 피해 복구에 적극적인 예산 투입을 강조하면서 추경을 두고 곧 머리를 맞댈 것으로 전망되지만, 탄핵 정국의 장기화로 고조된 정치적 긴장감이 추경 편성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국민의힘이 꺼내든 '예비비 추경'을 두고 여야는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올해 예비비는 2조4천억원으로, 지난해 정부가 제출한 4조8천억원의 절반으로 깎였다.
사상 첫 '감액 예산안'이다.
감액안은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결과다.
이에 국민의힘은 예비비 2조4천억원 가운데 산불 피해 복구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목적 예비비'가 4천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수조 원이 소요될 복구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원포인트'로 예비비 추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산불 피해뿐 아니라 장마와 태풍 등 재난·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예비비를 2조원가량 증액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이미 편성돼 있는 예비비가 아직 사용되지도 않았고, 부처별 가용 예산이 남아있다는 점을 들어 여당의 예비비 추경 요구에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부처별로 흩어져있는 9천200억원의 재해재난대책비를 우선 활용하고, 예비비가 아닌 직접적인 '산불 대책' 예산을 증액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예비비 증액 추경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차는 결국, 탄핵 정국과 직결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감액 예산안의 단독 처리 등 "민주당의 입법 독재"가 이유라고 주장했고, 이후 윤 대통령은 탄핵 소추됐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번 산불 사태를 계기로 야당의 삭감 예산안 단독 처리의 부작용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면서 계엄에 이르게 된 '야당 책임론'을 따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기에 계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보고 있다.
계엄 선포에 앞서 윤 대통령이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하라는 문건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넸다는 점이다.
예비비 논란에 더해 이번 추경의 또 다른 변수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최 부총리 등에 대한 야당의 쌍 탄핵 압박이다.
민주당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 등을 사유로 직전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 부총리 탄핵소추안을 지난 21일 발의했고, 탄핵 기각으로 직무 복귀한 한 대행에 대한 재탄핵도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의 이 같은 '쌍 탄핵' 압박이 결국 "추경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 대행과 최 부총리가 탄핵으로 직무 정지되면 추경을 논의할 여·야·정 국정협의체가 가동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여야가 추경을 두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가적 대형 재난 앞에서 여론을 의식해 추경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야 협의가 빠를수록 추경 집행도 빨라진다"며 "신속하게 여야가 추경에 합의하면 정부도 조속히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민주당 관계자도 "국민의힘이 산불 대책에 긴요한 구체적 내역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쟁이 아니라 민생 경제를 회복할 추경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