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한여름밤의 꿈』이란 제목의 희곡이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설정과 인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사각관계에 빠진 두 쌍의 남녀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희곡의 이런 내용 보다는 제목이 더 자극적이다. 한여름 밤에 벌어진 일들이 꿈처럼 이상한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하룻밤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밤에는 잠을 자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보통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남들이 자는 동안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존재도 있다.
그러나 내가 자는 사이에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 쓴 소설 립반윙클(Rip Van Winkle)은 낮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는 내용이다.
즉 주인공 립반윙클이 볼링 게임을 하는 유령들이 마시던 술을 훔쳐마시고 취해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그사이 20년의 세월이 지나 미국은 독립국이 되었고 자신은 백발 노인이 되어 있었다는 줄거리다.
밤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발생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만약 내게 중요한 의미 있는 변화라면 잠에서 깨어나면 빨리 상황을 파악해서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밤에 일어난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별것 아닌 일이라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지난 일요일 밤에 비가 온다고 해서 창문을 닫고 잤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휴대폰으로 ‘7시00분 부로 신천대로 동로의 통제가 해제되었습니다’라는 안전안내 문자가 와 있다. 자주 이용하는 도로라서 언제 통행이 금지되었나 살펴보니 새벽 2시에 호우경보와 함께 하천의 수위가 높아지니 통행이 금지되었었다. 그러다가 수위가 다시 낮아지니 바로 헤제된 것이다. 이런 일이 내가 자는 사이에 일어났던 것이다.
창밖을 보니 하늘은 맑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판단을 할 수 없는 기상이다. 그러나 뉴스를 보니 곧 다시 폭우가 올 것이라고 한다. 기상이변으로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면서 날씨변화가 심하다. 폭염과 폭우의 바톤터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도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아파트에 있으면 비가 와도 잘 모른다. 요즘 아파트는 방음장치가 잘 되어 있다. 특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대가 높아서 침수 위험도 없다. 날씨 변화는 일기예보를 계속 듣고 있어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자면서 까지 날씨에 신경쓸 겨를도 없다.
그런데 위험을 당한 지역도 있다고 한다. 특히 이번에 밤에 도로가 통제되었던 지역 주변에서는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이런 일이 내가 사는 집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조금 섬짓하다. 우리 주위에 재난이 닥치지 않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요즘 재해가 많이 발생한다. 올해 봄에는 산불과 가뭄으로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니 폭우와 폭염이 괴롭힌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월 말에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 진도 8.8이라는 큰 지진도 발생했다. 다행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중간에 일본 열도에 가려 우리나라에는 피해를 주지 않았다.
요즘 하천정비가 잘되어 있어서 옛날보다는 폭우 피해가 적다. 현대문명의 혜택이다. 그러나 이런 문명만 믿고 있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다. 방제시설들이 제대로 정비가 안 되어 있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대구 북구 노곡동 지역의 침수는 설치된 금호강과 연결된 수문을 믿다가 산불 때문에 제진기가 고장나서 발생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분명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는 안전에 도움이 되지만 과신할 수도 없다. 이러다가 한여름 밤의 꿈처럼 큰 일을 경험하고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들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