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쇄미록(瑣尾錄)』과 『해주일록(海洲日錄)』에는 무더위와 고된 노동 속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재충전했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다.
▶관료에게도 휴일과 휴가가 있었다
신라시대에도 관인의 휴일과 휴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는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됐다. 고려의 관인들은 매월 1일·8일·15일·23일, 대략 7일마다 하루씩 쉬는 ‘칠가(七暇)’를 누렸다. 자신이 병들거나 부모를 간병할 때, 멀리서 사는 부모를 찾아뵙거나 부모의 묘를 돌볼 때에도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혼례·상례·제사·질병·부모 봉양 등을 위한 ‘급가(給暇)’가 운영됐다. 세종은 젊고 재능 있는 문관들이 공무에서 벗어나 독서에 전념하도록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시행했다. 일반 휴가가 질병이나 가족 행사를 위한 제도적 쉼이었다면, 사가독서는 일정 기간 공무를 면제하고 학문과 저술에 전념하도록 한 인재 양성 제도였다.
▶선비는 책으로 더위를 견디다
남붕(南鵬, 1870~1933)의 『해주일록』에는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선비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32년 음력 6월 25일, 중복의 극심한 더위 속에서도 남붕은 새벽부터 『주자서절요』를 외우고 명나라 사람의 시를 읽으며 더위를 쫓았다. 그는 심한 병이 아니면 무더운 계절에도 베개에 기대지 않고 더욱 힘써 공부했다고 기록했다. 남붕에게 독서는 몸과 마음을 다잡는 여름나기의 한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책상 앞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1922년 음력 6월 23일에는 마을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해 호미씻이 잔치를 마련한 이들로부터 술과 안주를 대접받았다. 공부로 더위를 견디던 선비도 농사일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함께 쉬고 즐기는 공동체의 자리에 참여한 것이다.
▶호미를 씻고 함께 쉬다, 농민들의 여름휴가
호미씻이는 마지막 김매기를 마친 뒤 호미를 씻어 걸어 두고 하루 또는 며칠간 음식을 나누며 쉬고 즐기는 공동체의 축제로, 경북 북부에서는 ‘풋굿’이라고도 불렸다. 농번기를 마치고 가을 수확을 기다리며 농민과 머슴들이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의 『쇄미록』에는 1600년 음력 8월 6일 마을 사람들이 냇가에 모여 북을 치고 노래와 춤을 즐긴 모습이 기록돼 있다. 오희문은 이것이 농사일을 마친 뒤 호미를 씻는 의미로 먹고 노는 잔치라는 설명을 듣고, 일하는 사람들이 한 번 쉬고 노는 일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쇄미록』에서 근대의 『해주일록』에 이르기까지, 고된 노동 뒤에 함께 쉬는 풍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전통사회의 쉼은 관료에게는 제도적 휴식과 학문에 전념하는 시간으로, 선비에게는 독서와 교유의 시간으로, 농민에게는 함께 먹고 즐기는 공동체의 시간으로 나타났다”라며, “앞으로도 소장 기록유산을 바탕으로 옛사람들의 일과 쉼의 문화를 발굴·연구하고, 그 가치를 국민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로 소개하겠다”라고 밝혔다. 김연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