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기 김천소방서 예방안전과 소방경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하지만 피해의 크기까지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무엇을 준비하고,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화재 초기 우리 곁에서 가장 먼저 역할을 하는 것은 소화기와 감지기 같은 소방용품이다. 공동주택과 각종 시설에는 소방호스와 완강기 등도 설치돼 있다.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 불길을 막고, 화재 사실을 알리고, 피난할 시간을 벌어주는 장비들이다.
문제는 우리가 소방용품을 ‘설치하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만, ‘관리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집 한쪽에 놓인 소화기는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천장에 달린 감지기가 언제 설치됐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파트 복도나 건물 내부에 설치된 소방호스와 완강기 역시 평소에는 좀처럼 눈길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소방용품도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다.
겉모습이 멀쩡하다고 내부 성능까지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장기간 사용하거나 보관하면 부품과 재질이 노후할 수 있고, 관리 상태가 좋지 않으면 정작 필요한 순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화재가 발생한 뒤에야 고장을 확인한다면 이미 늦다.
음식에 소비기한이 있고 자동차에 정기검사가 있듯, 소방용품에도 사용 기간과 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소방청은 올해 7월부터 노후 소방용품의 합리적인 관리를 위해 주요 품목에 권장 내용연수를 제시하고 있다. 자동확산소화기와 완강기·간이완강기는 10년, 소방호스와 연기감지기는 15년이다. 다만 권장 내용연수가 지났다고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용 기간과 함께 외관과 성능 상태를 살펴 필요한 경우 교체하자는 취지다.
분말소화기의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내용연수가 10년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소화기를 살펴볼 때는 압력계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제조연월도 함께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공동주택이나 공장, 다중이용시설처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에서는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소방안전관리자와 관계인이 주요 소방용품의 제조연월과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 결과와 향후 교체 시기를 기록해 둔다면 관리자가 바뀌더라도 안전관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필요한 교체 비용도 미리 계획할 수 있다.
안전은 기억에 의존할 때보다 기록으로 관리할 때 더 단단해진다.
가정에서도 어렵지 않다. 오늘 집에 돌아가 소화기 옆면의 제조연월을 한번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감지기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고, 공동주택이라면 세대 내 소방시설도 함께 점검해 보자.
“우리 집 소화기는 언제 만들어졌지?”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다면 지금 한번 확인해 볼 때다.
안전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제조연월을 확인하고,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때 교체하는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대비까지 예고 없이 할 필요는 없다. 오늘 확인한 소방용품의 작은 숫자 하나가 훗날 우리 가족과 이웃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