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배 KTF 해양영토전략연구소장
화투(花鬪) 팔월 공산의 달은 억새 덮인 빈 산 위에 떠 있다. 마흔여덟 장 가운데 달이 그려진 패는 그것 하나다. 우리는 그 패를 공산명월(空山明月)이라 불렀다. 추석 밤이면 그 달이 안방 모포 위로 내려왔다. 하늘에 하나, 바닥에 하나였다.
차례(茶禮)를 물린 상이 윗목으로 밀려났다. 부엌에서는 전(煎) 냄새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 큰아버지가 패를 섞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패가 모포에 떨어질 때마다 짝 소리가 났다. 작은아버지는 십 원짜리를 쌓았다. 동전이 탑처럼 올라갔다가 무너졌다. 어머니는 송편 쟁반을 밀어 넣고 한 판만 거들었다. 넷이 모이면 한 사람은 광(光)을 팔고 물러앉았다. 아이들은 어깨 너머로 광을 셌다. 팔광(八光)이 손에 들어오면 아이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른들은 그 얼굴을 보고 웃었다.
"고!"
방이 조용해졌다. 다음 패가 뒤집혔다. 웃음이 터지거나 혀 차는 소리가 났다. 잃은 사람도 그 밤에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서울 사는 삼촌은 일 년 치 소식을 패와 함께 풀어놓았다. 누가 장가를 가고, 누가 아팠고, 누가 먼저 갔는지 우리는 그 판에서 들었다. 창밖의 달과 모포 위의 달이 함께 자정을 넘겼다. 아이들은 모포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다.
화투는 바다 건너 들어왔다. 본디 일본의 하나후다(花札)다.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셈을 바꾸고 판을 바꾸고 말을 붙였다. 피박, 광박, 흔들기. 일본에서 11월이던 비 패를 우리는 12월로 옮겼다. 우산 쓴 일본 사람이 그려진 그 패를 우리는 그냥 비광이라 불렀다. 남의 그림이 우리 안방의 말이 되었다. 들여온 것을 제 것으로 삼는 힘은 그때부터 있었다.
그 모포는 이제 없다.
차례상은 줄었다. 상을 차리지 않는 집도 많다. 연휴가 길면 공항이 붐빈다. 남은 가족은 영화관에 간다. 한 방에 모여도 각자 화면을 본다. 고스톱은 휴대전화 속에서 혼자 친다. 상대에게는 얼굴이 없다. 판이 끝나도 남는 이야기가 없다. 명절은 모시는 날에서 쉬는 날로 옮겨 갔다. 탓할 일은 아니다. 시절이 그렇게 흘렀다. 다만 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얼굴을 읽던 시간은 함께 사라졌다.
그 판에서 배운 것이 있다. '고'는 욕심이 아니라 셈이었다. 바닥에 깔린 패를 보고, 상대의 손을 읽고, 남은 장수를 헤아린 뒤에야 외쳤다. 섣부른 ‘고’는 독박으로 돌아왔다. 멈출 줄 아는 것도 실력이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말로 가르치지 않았다. 판에서 보여 주었다.
독도(獨島)를 생각한다.
일본은 백 년 넘게 셈을 해왔다. 1905년 시마네현 고시(告示)를 근거로 내세운다. 2005년에는 조례로 ‘다케시마의 날’을 만들었다. 교과서에 ‘고유 영토’를 새겼다. 도쿄 한복판에 영토·주권전시관을 열었다. 외무성은 여러 언어로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목소리는 크지 않다. 끊기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해마다 한 번 분노하고 다시 잊는다. 깃발은 많고 근거는 적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두 섬이 날씨 맑은 날 서로 바라보인다고 적었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로 석도(石島)를 울도군에 넣었다. 우리 손에도 패는 있다.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삼백 년 전 안용복은 두 차례 바다를 건너 울릉도와 독도를 따졌다. 그는 소리를 높이기 전에 근거를 댔다.
영토는 다시 섞어 치는 판이 아니다. 한 번 뒤집힌 패는 백 년을 간다. 두려운 것은 일본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 목소리가 바다 건너 평범한 사람들에게 먼저 사실이 되는 일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이 남의 말이 상식이 된다.
섬은 말하지 않는다. 섬의 내력은 사람이 말해야 한다. 사료와 지도와 차분한 문장으로 말해야 한다. 그 말을 이어 갈 사람은 모포 귀퉁이에서 잠들던 아이들의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물려줄 것은 동전이 아니다. 판을 읽는 눈이다.
올해도 공산에 달이 뜬다. 화면 앞에 모인 가족 위로 뜨고, 동해 끝 바위섬 위로도 뜬다. 섬 위에 뜬 달은 화투 팔월 패를 닮았다. 억새 대신 파도가 있다. 달은 해마다 같은 자리에 뜬다. 섬도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