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글로리아'는 좋은 희곡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뉴욕 잡지사와 LA 미디어 회사를 배경으로 삼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여느 직장 모습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어느 관객은 퇴근한 이후 '글로리아' 관람이 야근하는 것 같다고 '성토'하며 연극의 현실감을 짚어내기도 했다.
직원들이 전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뉴욕 한복판의 어느 잡지 편집부. 상사 '낸시'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딘'은 자기가 쓴 책을 출판하고 싶어한다. 비슷한 꿈을 가진 '켄드라'는 딘에게 늘 비아냥거린다.
인턴 '마일즈'는 아이비리그 출신이지만, 6주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조적인 한탄과 불만으로 가득한 이 사무실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글로리아'는 모든 사람에게 외면을 받는다.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는 글로리아의 시작은 평범했다. 팩트 체킹 팀의 로린에게 따듯한 양말을 짜서 줄 정도로 뜨개질을 잘했고 다정하며 친절했다. 책과 TV를 좋아하는 보통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급급한 전쟁 같은 직장에서 그녀의 평범함은 무참히 짓밟힌다. 마지막까지 남아있어야 하는 교열팀 소속의 그녀는 항상 뒷전이었다. 그녀가 존재하기 위해서 직장 내에서 권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후 글로리아와 잡지사 직원 일부는 실제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2막은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글로리아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남은 자들에게 망령으로 존재한다. 글로리아가 살려준 딘도, 글로리아가 증오했으나 그 자리에 없어 살아남은 켄드라도, 잡지사 재직 당시 글로리아를 제대로 알지 못했음에도 그녀가 중심이 된 충격적인 사건을 이용해 책을 펴낸 낸도 그 망령을 이용해 살려고 했고 살아남아야 했다.
낸시의 책을 출간한 미디어 회사의 임시 직원이 된 로린은 양심적으로 존재하려는 인물이다. 그만이 글로리아를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가방에서 꺼낸 인공 새싹 화분은 약육강식 세상의 자그마한 저항으로 보인다.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날 역시 약물 과다로 목숨을 잃은 극중 가상의 가수 사라 트위드의 노래 '글로리아 플라이 어웨이(Gloria Fly Away)'가 막판에 위로를 준다. 이 삭막한 곳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서는 저 멀리 떠나갈 수밖에 없다.
김태형 연출은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섬세한 시선이 깃든 이 연극에 윤활유를 쳐나간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글로리아를 제대로 연기한 임문희, 찌질하면서 욕망이 어그러진 잘생긴 남자 역에 이제 전범이 된 딘 역의 이승주, 정확한 발성과 대사의 리듬으로 켄드라에 생생함을 불어놓은 손지윤, 어수룩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로린의 옷을 제대로 입은 정원조의 호연도 기억해야 한다. 노네임씨어터컴퍼니의 7번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