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활동하면서도 한국을 동경했어요
. 한국은 뛰어난 음악가분들이 모인 곳이라 생각해서 함께 참여를 하고 싶었죠. 이곳에서 제 능력과 기질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25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젊은 지휘자 김건(35)의 눈빛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뒤섞여있다. 한국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1991년 11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한 뒤 지휘자가 되어 귀국했다. "음악에 집중을 하느라 한국에 올 겨를이 없었어요."
부모와 미국에 사는 그는 지인의 집인 창원에 머문 채로 서울을 오가며 한국 곳곳을 돌아보고 있다. "한국 드라마, TV 쇼 등을 많이 봐서 낯설지는 않아요. 항상 한국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음악학원 등을 운영한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네 살 때 피아노를 접한 그는 다른 아이들이 잘 고르지 않은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본 부모가 이민을 결정하면서 미국에 새 둥지를 틀었다.
커티스 음악원 오케스트라 악장을 역임하고 졸업 때 최고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학생에게만 주어지는 '프리츠 크라이슬러 상'을 받았지만 김건은 어렸을 때부터 품어온 지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뉴욕시티오페라단을 이끈 데이비드 에프런 등을 사사하는 등 정통 코스를 밟은 그는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움직이는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결국 콘서트홀이든, 오케스트라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저도 좋아하는 K팝이 미국 내에서도 인기인데 K팝처럼 빠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클래식에도 필요하다고 봐요. 베토벤의 진리를 알고 잘 해석해도 청중과 교감이 빠르게 형성되지 않으면 더 많은 분들을 만나기 쉽지 않거든요."
역시 변화가 계속 생기는 클래식음악계에서 그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클래식 음악계에 친밀도를 높일 계획이다. "지금 두각을 나타내는 연주자라도 그걸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죠. 한국뿐 아니라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든 클래식 음악 시장이 마찬가지에요. 좋은 분위기를 오래 유지하고 그걸 이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미국에서 쌓은 경험이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