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장래 희망이 ‘정규직’이라니
▲ © 방기태 국장님
우리는 그 어떤 직업이든 가져야 평생을 먹고 살수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직업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눈다. 정규직은 비교적 안정된 직업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그 자리에서 단박에 해고할 수가 있다. 한번이라도 해고당하면, 그때부터 떠돌이 알바신세가 되고 만다. 또한 알바신세에서 최저임금을 못 받아도, 한마디 불평도 못한다. 불평했다간, 그 자리에서도 견디지 못하고 만다.
도대체 직업이 무엇이기에 이 같은 수모(受侮)를 당해도 꼼짝할 수가 없는가에 의문이 든다. 직업의 어원(語源)을 찾아보면, 소명, 봉사, 능력 등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당대에서 이 따위 소리를 하고 있는가라고 할 여지가 충분하다. 소명은 성직자의 몫이다. 또한 봉사는 회사의 오너가 늘 주장하고 있기에, 봉급쟁이들은 늘 봉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겠다. 능력의 문제에서는 스펙 5종 경기에서 충분할 만큼 쌓았다.
흔히들 직업에는 귀천이 따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귀천이 있다. 귀한 직업은 정규직이다. 천한 직업은 비정규직이다. 귀하든 천하든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 11.5% 이후 약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1.1%로 전월(9.2%)에 비해 1.9%포인트 올랐다. 청년 실업자 수도 48만4,000명으로 2001년 3월(49만9,000명) 이후 가장 많다. 일하려는 청년들은 줄을 서고 있으나, 일을 할 자리가 없다.
이 탓에 청년들 사이에는 이 탓에 생긴 신조어가 취업포기, 연애포기, 출산포기 등이다.
이를 묶어 말하면,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삼포세대(三抛世代)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삼포세대일망정 그냥 두지를 않음에 따라 또다시 육포세대(六抛世代)란 신조어가 생겼다. 일자리, 소득, 집, 연애, 아이, 미래(희망)의 포기이다. 여기에서 삼포든 육포든 중요한 것은 미래(희망)이다. 청년들이 미래까지 포기한다면, 나라의 미래까지 없게 된다. 더구나 결혼포기로 아이가 없다면, 장차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갈 이들도 없게 된다. 아이가 없는 동네는 그야말로 적막강산(寂寞江山)일 것이다.
그래도 청년들은 적막강산을 일깨우기 위해 이력서를 몇 장씩이나 들고 이리저리 뛰고 있는 판이다. 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다.
청년들의 바쁜 모습을 한편의 시로써 표현한다면, ‘소낙비는 오지요/소는 뛰지요/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설사는 났지요/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김용택/ 이 바쁜 때 웬 설사) 현재 청년들은 ‘취업설사’ 중이다. 설사를 한들 바작(농기구인 지게 뒤에 부착하여 두엄이나 거름,재 등를 나를 때 사용하는 지게의 부착물이며, 재료는 가는 시누대나 싸리대를 노끈이나 칡순,새끼 등으로 역어서 만든다.)에서 허물어지기만 하고 있는 모양새가 오늘의 청년취업이다. 그러나 우리가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취업포기만을 하지 말라는 것일 뿐이다. 당부로써,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청년들의 취업이 하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판이니, ‘우리아이의 장래 희망이 정규적’이 아닌가한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가계부채(금융사의 대출과 카드사의 판매신용까지 포괄한 가계신용 기준)는 1천89조원이다. 개인 가처분소득(순처분가능소득/NDI 기준)의 138.0%에 달했다. 이 비율은 2005년 105.5% 이후 2006년 112.6%, 2008년 120.7%, 2011년 131.3% 등 10년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 비율은 개인들이 1년간 가용 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이다. 2002년 108.6%에서 2004년 100.8%까지 하락세를 보이다 상승세로 전환됐다. 어려운 경제용어가 수두룩해도, 결과는 돈이 없다는 뜻일 뿐이다. 없는 돈을 채우기 위해서도 역시 취업과 무관하지 않다. 취업으로써 돈벌이를 해도, 부채만 잔뜩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할수록 부채만 늘어날 뿐이다. 경위야 어떠하든 돈에 진 눌린 일상이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는 공자(孔子)의 말이다. 그 옛날 공자시대는 아마도 나물과 물은 공짜였을 것이다. 그때는 자기 텃밭의 나물을 먹었을 것이고 또한 자기의 웃물에서 길러다 먹었으니, 이도 역시 돈이 들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두를 시장에서 돈을 들여야 한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천상병/ 나의 가난은의 일부) 읽고 있자니 참으로 천하태평이다. 그럼에도 햇빛에는 예금통장이 필요 없다는 말에서 희망의 한 줄기를 보는듯하다.
만약에 햇빛에 돈이 든다면, 취업설사 중인 청년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도저히 살수가 없을 것이다. 청년들이여, 꽃피는 축복의 봄이다. 들판으로 나가 햇빛을 한번 보자.
햇빛에서 희망을 읽자. 더하여 우리 모두가 비정규직이 아예 없는 사회 만들기에 온 힘을 모으자. 그래서 우리 아이가 정규직이 장래 희망이 아닌, 저마다 타고난 인성과 품성에 따른 직업으로 이 세상을 밝히는 직업인이 되기를 소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