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막지 말라
최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이 보도에 긴 화단이 생겼다. 봄날이 무르익으면 이 곳에 회양목들이 예쁜 꽃을 피우면서 봄기운을 물씬 풍길 것이다. 기자도 화단을 처음 봤을 때 "봄이 여기에도 왔구나" 싶어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곳이 예쁜 화단으로 단장한 속내를 알고는 못내 실망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3월11일 심상철 법원장의 결재를 거쳐 법원 삼거리에 화단 조성과 보도블럭 교체를 요청하는 공문을 서초구청에 보냈다.
명분은 천막과 현수막 등 일명 '법원 삼거리'에 설치된 불법 점거물들이 청사 방문객들의 불쾌감과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것.
법원 삼거리는 지금까지 각종 주요 사건 재판을 치르는 이들의 기자회견 장소나 1인 시위자들의 집회 공간으로 사용되는 등 일종의 '광장'이기도 했다. 일생을 모아온 재산을 날린 동양 사태 피해자들, 직장 폐쇄로 갈 곳을 잃은 콜트 악기 노동자들, 가습기 살균제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이곳에 몰려오곤 했다.
당연히 기자의 눈살마저 찌푸리게 하는 '악성 민원인'들도 끼어 있다. 365일 귀가 먹먹하도록 확성기를 동원해 비난과 저주의 말들을 퍼붓는 현장을 지나치다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곤 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서울고법 관계자는 6일 "최근 악성 민원인들의 시위는 보도를 상시 점거하는 등 사실상 불법"이라며 "불법은 그에 상응하는 공권력으로 막아야 하지만 강제집행을 할 경우 더욱 큰 논란이 예상돼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극히 일부 악성 민원인들의 행태가 다수의 공간이었던 법원 삼거리를 화단으로 막는 명분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 화단을 볼 때마다 '꽃'이 꽃 본연의 의미로 와닿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다. 자칫 법원이 꽃으로 치장한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 저어스럽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해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이해심과 포용력, 균형감각에 기초한 공정한 안목 등 고귀한 덕목을 갖춘 지혜로운 인격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의 바람이 법원의 봄 정원에도 스며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