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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영토내셔널리즘이 극에 달하는 시점 자위대가 독도를 ..
오피니언

日의 영토내셔널리즘이 극에 달하는 시점 자위대가 독도를 향한다

최장근 교수 기자 입력 2021/06/28 17:30 수정 2021.06.28 17:31

최 장 근
대구대 일본어과 교수
독도영토학연구소장

 

 

최근 북한은 일본 방위성 통합막료감부(합동참모본부)가 SNS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비전 추진을 향한 대응”이라는 동영상을 올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하여 영토분쟁지역이라고 한 것에 대해 “천년숙적과 기어이 결산해야하나!”라고 일본의 독도야욕이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한 206개국이 참가하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표기하여 홍보하는 것에 대해 한국정부가 공식적으로 삭제를 요구한 것을 거부하고 독도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일본의 영토내셔널리즘은 날로 팽배해지고 있다. 
일본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더글라스 맥아더)은 각서 677호로 한반도와 더불어 ‘제주도, 울릉도,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분리하여 한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독도를 실효적으로 관할 통치하게 되었다. 
1951년 9월 연합국이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고, 1952년 1월 이승만대통령이 평화선을 선언하여 독도기점 대략 8해리 지점을 지나는 해양경계선을 침범하는 일본 선박들을 나포하여 해양의 영토주권을 확립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52년 4월 대일평화조약을 비준하는 일본국회에서는 조약국장이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표기된 ‘일본영역참고도’(일본해상보안청 발간)를 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야당 위원의 항의 속에서 최종적으로 대일평화조약을 비준했다. 


이것은 평화선으로 보호되어진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 것이 된다. 1965년 한일협정에서는 197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사토 에이사쿠 수상이 일본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으로는 ‘현상유지’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관할 통치하고 있는 상황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역대 정권들은 실질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고 독도에 대한 집착을 대부분 버렸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이 최근 일본의 하토야마 전 수상은 “미국이 한국영토로 인정하였을 때 일본정부는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하여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노골적으로 발언하였다. 
이는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부활시키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과 스가 요시히데 정권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집착을 비난한 것이다. 
일본은 세계대전에서 패한 지 7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덜한 상황을 호기로 삼아 독도에 대한 영토내셔널리즘은 날로 팽배해지고 있다.


일본은 1868년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를 만든 후, 1869년 아이누민족의 영역이었던 홋카이도를 강제로 편입했고, 1872년 유구를 점령하여 유구번으로 개칭한 후 1879년 강제로 오키나와현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에 편입시켰다. 
1874년에는 대만을 침략하여 점령에 실패한 후, 1894년 청나라를 침략하여 중국에서 분리해서 대만을 탈취했다. 


청일전쟁 중에는 은밀히 중국의 속국이었던 유구국의 일부인 센카쿠제도를 국제법의 ‘무주지 선점’ 이론을 악용하여 일본영토에 편입했다. 또한 1905년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만주와 한국을 강탈하기 위해 러시아를 침략했다. 
전시 중에는 센카쿠제도와 동일한 방법으로 은밀하게 한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여 침탈하려 했고,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마침내 1910년 강제로 병합했다. 
1932년에는 만주족의 독립을 선동하고 무력을 지원하여 중국에서 만주를 분리시켜 식민지로서 지배했다. 
1937년에는 중국본토를 침략했고, 1941년에는 일본의 해외 영토확장을 견제하던 미국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미국령 하와이를 침략했다. 


연이어 동남아 제국과 호주를 제외한 태평양 연안국가 모두를 점령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연합국을 결성하여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일본을 항복시키고 침략한 해외영토를 완전히 몰수했다. 
만일 원자폭탄의 세례가 없었다면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 패권주의 국가로서 국제사회를 호령하는 다민족의 대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스스로 반성하여 자신들이 침략하여 확장한 아시아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선의적으로 반환한 것이 아니고, 연합국의 강요에 의해 몰수당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도 일본정부는 몰수당한 영토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회복하려는 기운이 의식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학교 교육에서 침략전쟁의 잘못을 반성하도록 하기는커녕, 오히려 원자폭탄의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여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제도는 영토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센카쿠제도 주변에서 어선과 해양경찰선을 동원하여 중국영토라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원래 센카쿠제도는 오키나와의 일부였기 때문에 오키나와를 독립국가로서 인정했어야 했다. 쿠릴열도는 현재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일본은 자신들의 북방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경제지원 등을 대가로 협상을 통해 평화조약 체결을 전제로 영유권을 확립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원래 쿠릴열도는 사할린과 함께 아이누민족의 영역이었는데, 일본제국과 러시아제국이 침략하여 분할 점유한 곳이지만, 러시아는 얄타협정에서 합법적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독도는 종전 후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 677호에서 결정한 것처럼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한국영토로 처리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냉전체제 상황 속에서 대일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공산진영이 기권함으로써 미국과 영국 중심의 자유진영만이 단독으로 추진하여 공산진영의 중국과 러시아, 신생독립국인 한국의 이권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일본의 입장을 두둔했다. 그 결과 대일평화조약에서 센카쿠제도와 쿠릴열도, 독도의 법적 지위를 정치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영토문제를 야기해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 일본은 6년간의 미군정의 통치기간 동안 미국을 회유하여 오키나와를 일본영토에 반환하도록 했고, 주변국가인 러시아. 중국, 한국에 대해 영토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베정권과 이를 이어받은 스가정권은 학교 교육에서 독도 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새로운 세대들에게 영토내셔널리즘을 주입시키고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히비아공원에 독도전시관을 개관하는 등 국내적 운동을 넘어 올림픽, 방위백서, 외무성 홈페이지 등을 통해 국제사회를 향해 사실을 날조하여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선동하고 있다. 


한국이 경각심을 갖고 이를 대처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면 대내외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정당화해서 호전적인 일본은 자위대를 독도로 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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