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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소리가 일으킨 기이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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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波息笛 만파식적 - 소리가 일으킨 기이한 일들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4/05 17:31 수정 2022.04.19 16:30

 

정 예 산<br><자유기고가>
정 예 산
<자유기고가>

6.1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두 번을 했으니 한 번 더 잘 할 자신이 있다는 A 후보, 두 번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니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B후보, 기억에서 지워진 옛날 행적을 들춰내 삼세판을 구걸하는 C후보간 삼파전이 예상된다.

 
당원들과 시민들을 솔깃하게 하는 공약이 있는가 하면 그럴듯하게 꾸며낸 소리도 있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잡음도 섞여 있다. 공약을 외치는 사자후에다, 지지자들 응원소리와 함께 조만간 인기 유행가를 개사하여 동네방네 틀어댈 것이다. 

 

내용이 뭐든 멜로디가 친숙하면 흥얼흥얼 따라 부르게 된다. 당선에 도움이 되는 소리가 있고 반대로 유권자 비위를 거슬러 역효과를 내는 소음도 있다.

 
소리는 인간의 삶에서 뜻밖의 놀라운 일들을 일으킨다. 눈으로 보는 것 못지 않게 귀로 듣는 것은 사람(혹은 동물)들에게 때로는 믿을 수 없는 에너지를 발휘하게 한다.

심지어 피리소리는 인도 방울뱀을 춤추게 하고 칭찬은 포항 앞바다 고래도 덩실거리게 한다.


호머는 일찍이 오디세이에서 사이렌 신화를 소개했다. 상반신은 여자, 하반신은 새의 모습인 마녀로 노래와 연주 솜씨가 뛰어났는데 하필이면 그 재주를 사람 잡아먹는데 사용했다. 

 

지중해 한 섬에 살면서 감미로운 노래와 연주로 그 곳을 지나는 선원들을 유혹한다. 오디세이 일행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밀랍으로 귀를 막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밧줄로 돛대에 몸을 묶었다.

 
찬란한 전적과 명예를 찬미하면서 감동의 목소리로 유혹하자 밧줄을 풀어주도록 간청하지만 부하들은 오디세이를 더 꽁꽁 묶었다. 덕분에 그들은 무사히 유혹을 물리쳤고, 이에 낙담한 사이렌들은 바다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다. 정치꾼들 공약을 보면서 사이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기원전 14세기 이스라엘에서는 피리소리에 거대한 성이 무너진 이야기가 있다. 전지 전능한 신이 이르기를 ‘저 성 둘레를 하루에 한 번씩 돌아라. 그렇게 엿새 동안 도는데 사제 일곱 명이 나팔을 하나씩 들고 법궤 앞에서라. 칠일째는 사제들이 나팔을 부는 가운데 성곽을 일곱 번 돌아라. 

 

나팔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거든 온 백성은 크게 함성을 질러라. 그리하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다’. 거대한 여리고 성이 피리 소리와 함성에 무너진 이스라엘판 만파식적 이야기다.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사면초가는 사기 항우본기에서 유래한다. 항우가 해하에서 한나라 군대에 포위되었는데 초나라 군이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쉽게 기세가 꺾이지 않자, 어느 날 한군이 초군의 사기를 꺾으려고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울려 퍼지게 했다. 

 

고향과 가족 생각에 기세가 꺾인 초군에서 탈영병이 생겨났고, 한군에서 탈영하는 초군을 죽이지 않고 일부러 지나가게 해주자 탈영병 규모는 삽시간에 늘어났다. 

 

심지어 왕의 숙부인 항백, 최고 사령관 종리말, 계포 등도 탈영하고, 결국 초나라군에는 환초, 주란과 800여명의 군사만이 남았다고 한다. 이에 초왕 항우는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라며 크게 놀라고 슬퍼했다. 비통한 심정으로 항우가 부른 노래가 그 유명한 '해하가'다.

 
선거가 후끈 달아오르면 이쪽 저쪽에서 상대편 지지자를 유혹하는 사이렌 요정들 노래소리가 들리게 된다. 자신이 당선되면 더 많은 처우를 약속하고 더 높은 지위를 제안하고 당장 눈 앞에 손에 잡히는 먹이를 던져 주기도 한다.

중앙당 인사와 친분을 과장하여 아전인수식으로 자신의 공천을 기정사실로 몰아가기도 하고, 참신한 정치 신인에 대한 지역사회 여론을 최대한 부각하여 어필하기도 한다. 

 

물론 어떠한 선전에도 넘어가지 않는 골수 지지자들도 있다. 아예 귀를 틀어막고 모든 유혹을 차단해 버리는 ‘대깨문’이나 ‘수꼴’들이 이에 해당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양측 진영 장병들의 사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쳐 답보상태의 전황을 뒤엎은 노래가 있다. 

 

독일 병사 한스 라이프는 전쟁의 공포와 외로움을 달래려 고향에 두고 온 여자친구 릴리와 종군 간호사 마를렌 모습을 한데 묶은 시를 지었다. 1938년 작곡가 노르베르트 슐체가 라이프의 시집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곡을 붙여 만든 것이 바로 “릴리 마를렌”이다.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각국 병사들 전투 의지에 불을 붙인 노래로 가히 현대판 사면초가라 할 수 있다.


상대 진영을 혼란에 빠트리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뛰어난 전략이 승리를 만들어내는 선거전은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하기 쉽다. 

 

불과 얼마 전에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완전 뒤집힐 만큼 잘 살게 된다고 TV 토론에서 후보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무슨 말로 유권자 마음을 홀렸는지 잊지 말기를 바란다. 

 

임기응변용 화려한 수사, ‘아니면 말고’식 헛된 약속, 모든 잡소리들을 잠재울 참된 소리로 진심을 전하는 후보가 6.1 선거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들을 우롱하는 오만방자한 거짓말은 표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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