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정리된 개념을 일본이 번역하면서 우리도 사용하게 되었다. 물적 유통의 줄임말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물품의 시간적 가치와 공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제반 활동을 의미하게 되었다.
생산자가 스스로 물류를 수행하는 1자 물류, 업체에서 세운 자회사를 통하여 수행하는 2자 물류, 물류서비스를 원하는 업체와 연관이 없는 물류회사를 통해 운송, 보관, 출고, 입고 같은 물류 전반을 위탁하는 3자 물류, 최근에는 물류 시스템 전반의 최적화와 첨단화를 적용한 4자 물류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마존닷컴을 필두로 IT 솔류션을 제공하는 시스템 인티그레이션(SI) 업체의 확장에 따른 결과다.
물류비를 절감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물류는 기업경영의 핵심 영역이다. 생산비 절감은 한계가 있으나 물류비는 관리혁신으로 대폭적인 감축이 가능한데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수출 화물 가격 경쟁력은 전적으로 물류비에 좌우된다. ‘경제의 암흑대륙’ ‘비용 절감을 위한 최후의 미개척 분야’ ‘제3의 이윤원’ 등으로 학계에서도 물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동물 인간은 물류를 떠나서 생존하기 어렵다. 인간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서 어디선가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느 농경지에서 재배된 벼가 쌀이 되어 내 밥상에 실려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게 된다. 의식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자는 물류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매일 마시고 있는 커피는 물류가 없다면 사라지게 된다. 커피가 없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류의 역사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까. 인류 문명은 물류와 함께 진보해 왔다. 인간의 삶 자체가 물류의 총합이다. 인간의 육체에 담긴 영혼도 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흐름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나서 그 열매를 아담에게 가져다 준 행위가 어쩌면 최초의 물류다. 신의 계율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배낭에 담긴 물품들이 인류 최초의 이삿짐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챙겨서 어디론가 향한 인류 최초의 여정이다. 이 여정이 없었더라면 인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카톨릭 교계에서는 아담과 이브의 죄악을 ‘복된 죄(Felix Culpa)’라 부르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최초의 농사를 수확한 밀이나 포도나 육축업으로 생산한 잉여 식량을 수송하면서 본격적인 물류가 시작된다. 바퀴와 항해술의 발달로 물류는 인류 문명과 함께 눈부시게 진보하다가 날개의 발견으로 정점을 찍었다. 앞으로 전기차나 소형원자로 선박, 초고속 이동 튜브는 물류산업과 인류 문명을 어디까지 변모시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세 번을 보고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 ‘그린 마일’. 사형수가 걸어가는 마지막 1마일의 녹색 표시구간이다. 교도관 톰 행크스의 명품 연기가 돋보인다. 물류에서도 '라스트 마일'이란 말이 최근에 회자되고 있다. 물건이 전달되는 마지막 구간이다. 인간이 최후를 맞이하듯 물건이 도착함으로써 물류는 종결된다. 모든 물건은 사용자가 직접 받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물건과 함께 마음까지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의 손을 떠나는 최초의 ‘퍼스트 마일’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아마존에서는 ‘풀필먼트’라는 개념도 내놓았다. 주문된 상품이 물류센터 입고, 포장, 배송 등을 거쳐 고객에게 배달될 때까지 전 과정을 물류 전문업체가 일괄적으로 처리해 주는 것을 뜻한다. 풀필먼트를 위해서 주문한 상품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구매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구축하려는 것이다. 핀란드에서 직구한 소파가 수에즈운하를 지나고 있는지 모바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다. 청량리에서 배달한 피자가 왕십리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성수동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피자가 문 앞에 도착하니까 배고픔을 잠시 견디면 된다.
최근 발족한 물류회사에 ‘흐르다(Flow)’란 이름을 적용한 것은 신의 한수로 보인다. 물류산업은 국가 산업의 젖줄이자 혈맥이기 때문이다. 신은 스스로 선택한 민족을 오랜 노예상태에서 구원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냈다. 젖과 꿀은 ‘흘러야’ 한다. 젖과 꿀이 나서 고여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곳으로 흘러야 한다. 자본주의 근간인 금융과 함께 물류의 생명은 흐르는 것이다.
제5차 국가물류기본계획(2021~2030)은 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담고 있다. 첨단 스마트 기술기반 물류시스템 구축과 디지털 전환, 공유 연계형 인프라 및 네트워크 구축, 사람중심 일자리 조성과 고품격 물류 서비스 창출, 글로벌 경제지도 변화에 따른 전략적 해외시장 진출 등이다.
국가 산업의 젖줄이자 혈맥을 끊으려는 화물 수송수단 파업은 이런 관점에서 가장 심각한 국가적 재난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국가 산업의 동맥경화는 막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