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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의자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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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의자의 언어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9/13 16:50 수정 2022.09.13 16:51

직장 근처에 연못이 있다. 가을 하늘이 연못에도 담겼다. 수양버들 아래를 걷다 보면 바쁜 업무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낀다. 잠깐이나마 평온함으로 산책 할수 있음이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 이 정도로 만족하자’를 혼자 중얼거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걸음을 멈추었다.
플래카드가 붙은 울타리를 벽 삼아 헌 의자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곳에 자리 잡기 전, 각기 다른 공간에 놓여 있었을 의자들이다. 어느 집 주방에서 원목 식탁과 세트로 놓여 그 가족의 일상을 들었을 의자, 카페의 조명 아래 푹신한 쿠션감으로 많은 사람을 맞이했을 의자, 일벌레가 종일 앉아서 뭉갰을 사무용 의자, 어느 꼬마가 앉아 놀았을 병아리 모양 의자가 있다. 이런 것들을 왜 여기다 버려 놓았을까, 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사무용 의자 등받이에 붙여진 종이다.
- 의자에 앉지 마세요. 의자 바닥이 모두 빗물에 푹 졌었습니다. -
살짝 웃음이 나왔다. 글자의 맞춤법이 틀려서가 아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배려가 담겨있음에 나오는 기분 좋은 웃음이다. 그제야 산책을 나온 어르신들이 쉬어가는 자리인 것을 짐작한다. 그러고 보니 의자에는 아직 빗물이 고여 있다. 글을 써 붙여 놓은 분이 의자에 앉았다가 옷이 젖었던 것일까?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되었겠다. 아니면 산책 친구가 그러했을까? 아이들처럼 많이도 웃었겠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극을 만들어본다.
종이에 적힌 글씨체에서 서툴게 써 내려가는 손이 연상된다. 의지와는 달리 떨리는 손으로 삐뚤게 써지는 글씨, 손아귀 힘의 강약 조절을 표정으로 하는 주름진 얼굴, 서랍에 넣어 둔 테이프와 가위를 들고 나서는 길, 천천히 걸어왔을 가늘어진 다리를 떠올려본다. 짐작하는 그 ‘마음 씀’에 밥으로 채운 배보다 마음이 더 부른 가을날이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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