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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여섯 시 십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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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여섯 시 십일 분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10/06 17:42 수정 2022.10.06 17:43

여고생 셋을 차에 태운 줄 알았다. ‘응답하라 1985’ 정도의 수식어를 붙인 여고생들 같다. 혼자 조용히 다니던 나로서는 살짝 당황이 되는 새벽이다. 캄캄한 새벽에 나서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텐데 약속 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나타났다. 간단한 먹거리까지 챙겨서 왔다. 그녀들의 기분은 어둠 속에 하얗게 드러나는 치아로도 알 수 있다.
화진 해변에 내렸다. 새벽공기가 생각보다 더 차다. 바람이 불어 손으로 모자를 눌러쓴다. 백사장을 걷는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희붐해지는 바다를 깨운다. 참 맑고 즐거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간이 헬기장으로 가는 동안 수평선에 노을이 번졌다. 마음만큼 걸음도 바빠져 신발에 모래가 들어갔다.
순비기나무 군락을 지나면서 보니 해변의 계절도 바뀌어 있다. 꽃은 지고 수분이 빠진 잎은 오그라들었다. 열매와 줄기가 드러나는 순비기나무는 내가 걸어가고 있는 삶의 시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중턱에 와 있다. 선택의 여지 없이 태어나 시작된 삶이 모래땅 위로 줄기를 뻗어 뿌리를 내린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달렸다. 가을볕과 해풍에 열매는 검은 자줏빛으로 익어간다. 아이들이 독립하듯 열매도 영글면 나무로부터 분리된다. 간밤에 잠을 설쳐 퀭한 눈으로 나무들을 살핀다. 사방으로 굵게 쭉 뻗은 가지에 열매까지 풍성한 나무가 있고, 그 세력 옆에 겨우 뿌리 내려 가늘고 느리게 가지를 내미는 나무, 기생하는 식물 덩굴에 얽혀 잎이 타들어 가는 위태로운 나무, 군락지를 벗어나 외따로 있는 나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몇 발짝 거리를 두고 보면 해변의 풍경 안에 있을 뿐이다. 46억 년 된 지구에 속한 그저 작은 조각으로 표현될 그곳에 있다.
해돋이 포인트로 점찍어 놓은 간이 헬기장에 도착했다. 맑은 날에도 구름의 위치에 따라 수평선부터 떠오르는 해를 못 볼 때가 많다. 날씨 정보에서 말한 여섯 시 십일 분이다. 오늘의 일출은 제대로다. 몇 번의 헛걸음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바람은 수평선을 비켜 구름의 모양을 만들었고, 노을은 구름에 색을 입히고, 우리는 감탄을 쏟아냈다. 세상에! 어쩜! 우와! 대단하다!
최고치로 들떠있던 그녀들이 해돋이 장면에 숙연해지며 손을 모은다. 엄마와 아내와 딸과 자신을 담은 소망을 비는 것이라 짐작한다. 해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붉은 하늘은 사라졌다. 한기가 느껴져 바람을 피해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각자 살아내는 이야기를 웃음과 눈물로 드러낸다. 순비기나무의 그 군락 안에 우리들 사는 모습이 들어있다.
매일 해가 뜨지만, 해돋이 풍경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 하루가 어제와 완전히 같은 날도 없다. 어느덧 갱년기 증상을 이야기하며 같은 시기를 살고 있지만, 살아내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 다름을 알고 어울려 살아가는 우리. ‘우리’라는 말이 따뜻한 커피처럼 스며드는 아침이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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