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모래 위에 나뒹구는 지푸라기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말라가는 풀이었다. 잡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이파리가 생각보다 질겼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파리의 곡선들이다. 수분이 빠지면서 바람이 부는 데로 뒤엉킨 걸까. 바람의 결이라도 보여주려는 것일까. 바닷가 모래땅 위에 자라는 풀의 특징대로 옆으로 줄기가 뻗어있다. 줄기는 모래를 움켜쥐고 있는 형태다. 일단 사진으로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을 벗으려다 멀뚱히 섰다. 일부러 꺼내둔 아들의 슬리퍼가 더 크게 보인다. 연말에야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했지, 라며 혼잣말을 한다. 딸에게 보낸 톡을 열어본다. 읽지 않은 것을 보니 아주 바쁜가보다. 거실에 놓인 액자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들이 웃는다. 앞니가 빠진 아이들의 사진을 어루만진다. 서로 엄마 옆에 자겠다고, 엄마는 자기를 보고 자야 한다며 징징대던 녀석들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두 녀석 사이에서 천장을 보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양손을 녀석들에게 저당 잡힌 채로 말이다. 아이들로 인해 나의 존재감이 충분히 채워졌던 행복한 시기였다. 어느새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이제는 그저 묵묵히 있어 주는 엄마의 역할이 남았다. 어떤 상황에도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는 역할이다. 낮에 보았던 풀의 뿌리를 상상한다.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여러 가지 검색어를 입력해본다. 여기저기 더듬어 찾아낸 것이 ‘통보리사초’다.
이미지 사진을 보니 해안에서 흔하게 보았던 풀이다. 빳빳하게 뻗은 초록색 이파리는 윤기가 났고, 보리 이삭 같은 꽃은 기세등등했다.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마른 이파리로 겨울을 난다. 봄이 되면 다시 푸르게 빛을 올린다. 그런 땅 위의 변화에도 뿌리는 묵묵하다. 그저 모래땅 아래에 중심을 두고 깊게 뻗어있다. 그 안에서 호흡하며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줄기로 공급한다. 겨울 동안 축적한 영양분으로 줄기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오늘도 모래땅의 뿌리들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더 아래로 내려간다.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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