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고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난 주에는 꽃샘추위로 아침 저녁으로 많이 쌀쌀했었지만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달력상으로는 확실한 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계절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개로만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구분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봄
이 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시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여름, 한겨울이란 표현은 있지만 한봄, 한가을이란 표현은 없다.
이른 봄 이나 늦봄 등과 같이 수식어는 붙이지만 봄과 가을의 계절을 세분화하여 따로 구분하는 말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나마 가을은 시간이 가면 깊어간다고 말을 하는데 봄에는 어떤 표현이 좋을까?
최근 기후변화로 봄가을을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진다고 하였지만 봄과 가을은 기후의 변화를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이라고 해서 다 같은 봄은 아니다. 같은 봄이지만 초봄과 늦봄은 많이 기후가 다르다. 봄과 가을은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이어주는 중간인데 겨울에 가까우면 춥고, 여름에 가까워지면 덥다.
기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으로도 봄을 구분할 수 있다. 같은 봄이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을 나타내는 측면으로 보면 희망의 봄이 되고, 반대로 미세먼지와 보릿고개로 고생하는 측면에서 나쁜 의미의 잔인한 봄도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유독 봄에는 잔인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봄은 어떤 의미의 봄인가. 올해 봄은 여러 가지 좋지 않다.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변화가 많았다.
정치적 변화는 격랑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요즘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는 극단적이다. 이러다가 나라가 갈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이 치열하다. 미국이 중국에 34%의 관세를 때리니 중국도 미국의 제품에 24%의 관세를 때렸다고 한다. 가히 관세정쟁이다. 여기에서 우리나라도 유탄에 맞고 있다.
환경문제는 산불 때문에 발생했다. 지난 산불로 경북 북부지역의 산림 환경이 억망이 되었다. 파괴된 산림이 복원되는데 수십년이 걸린다는 연구도 있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해야 하나 걱정도 된다.
산불은 경제문제와도 연결된다. 산불 때문에 농사도 심각하다. 산불에 묘종과 같은 농사를 짓는 기반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옛날에 봄마다 오는 보릿고개를 현대사회에서 겪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꽃은 피고 있다. 지난주는 벚꽃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벌써 곳곳에 벚꽃이 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는 벚꽃은 전성기의 화려함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철죽과 같은 다른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그 지위를 이어받으려 하고 있다.
나는 만개한 벚꽃을 차마 즐기지 못했다.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아픈 마음 때문에 심리적으로 차마 즐길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나가다 얼핏 본 금호강변 둑에 핀 벚꽃은 여전히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꽃들을 즐기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들에게 철없는 사람이라고 욕을 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생각과 상황이 다르다.
내가 즐기지 못한다고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의 스트레스 가득한 상황을 저렇게라도 해서 풀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름이 오기까지 남은 봄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지금의 상황도 예전엔 알 수 없었는데 앞으로의 세상도 알 수 없다.
올해 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기운이 강하게 퍼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