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5대 규제개혁과제' 건의
산업계가 시장성숙과 제조업 샌드위치 현상으로 '골든타임'에 처한 한국경제의 '저성장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정부에 강조했다.
20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규제인프라, 회색규제, 탁상규제, 우물안 개구리규제, 성역규제 등 '5대 규제개혁과제' 건의문을 청와대,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우리 경제는 세계시장에서의 新샌드위치현상과 국내 제조업 공동화, 시장성숙에 의한 성장한계와 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 등에 직면해 있다"며 "한 차원 높은 규제개혁을 통해 경제시스템 전반의 구조개혁을 이루고, 경제계의 신사업 추진을 적극 지원할 때"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 규제는 신제품을 개발해놓고도 적시에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으로 기업들을 몰아가고 있다.
대한항공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인 비행체를 이용한 물류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 무인헬기(틸트로터)를 시범제작하고 시험비행까지 마쳤지만 사업 진출에 차질이 빚어졌다.
무인 비행체를 이용한 소포 배달은 독일의 운송회사인 DHL가 첫 시도한 미래형 사업. 미국의 경우 이미 지난 2012년 무인항공기 민간운용법이 제정, 차세대 유망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향후 5년 내 전체 주문량의 86%를 무인항공기(드론)를 통한 '30분 내 택배'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혀 이미 상용화에 대한 기대가 높다. 미국은 내년 9월께 사업 관련 규제 인프라 구축을 마칠 계획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빨라도 규제 인프라 구축이 오는 2017년말께나 끝날 예정이어서 기술을 개발해놓고도 사업 진출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존규제로 해결이 어려운 융합신제품 개발에 대응해 관련 규제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며 "정부가 해당 인증기준을 함께 개발해 출시단계에서 신속히 적용하는 '미국형 이노베이션 패스웨이(innovation pathway)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헬스케어 스마트기기 시장도 마찬가지. 삼성전자는 피로도의 지표인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기능을 최근 출시된 갤럭시노트4에 탑재, 미국에 출시했지만 국내에서는 기능이 제외됐다. 국내 의료기기법에 발목이 잡힌 결과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미국은 피로도나 심전도, 혈당체크용 센서 등을 탑재해도 환자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비(非)의료기기로 분류하지만 우리나라는 심박·맥박측정기능과 운동·레저목적에 한해서만 의료기기법 적용을 면제하고 있다"며 "환자용 제품이 아니라면 미국처럼 건강진단기능 탑재형 IT제품에 대한 의료기기법 적용을 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럽 규제나 민원 등 '돌발규제'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대한상의는 지적했다.
현대차 뚝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서울강북뉴타운사업, 강릉 하슬라 예술촌 등이 대표적인 예.
이들 사업은 비도심지역 50층 이상 신축금지규제 신설(현대차 뚝섬GBC), 과도한 기부채납요구에 따른 사업성 저하(강북뉴타운, 보유토지의 35% 수준), 지자체 복합규제(하슬라 예술촌) 등로 사업이 무산되거나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상의는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나 민원이 법령보다 상위법으로 작동하는 관행 개선 ▲현행법상 '주민동의'의 기준 구체화 ▲자의적으로 운영되던 우량농지기준 별도기준 마련 등을 요청했다.
대한상의는 정부의 획일적인 '아날로그식' 행정 규제에 대한 불편도 호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염 토지 복원에 관한 문제다. 현재 공장 부지 내 오염 토양을 복원할 경우에도 관련법에서는 개발 행위로 보기 때문에 약 2개월간의 인허가 기간이 필요하다. 또 기업들이 나무로 만든 1회용 운송 받침판을 보일러 난방용으로 태울 경우 폐기물관리법을 위반하게 된다.
대한상의는 "각종 획일적인 규제를 현실에 맞게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각종 중복신고의무도 전자정부 3.0시대에 걸맞게 주무관청에 1회만 신고하면 전자정부 시스템을 통해 자동처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우물안 개구리식 규제도 개선 대상이다.
수박은 신선도를 꼭지 부위로 판단한다. 농산물관리법상 꼭지가 떨어지면 제값을 받고 판매할 수가 없게 된다. 수박농가가 수확 시에 '꼭지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다.
또 미용목적의 눈썹문신, 치료목적의 척추마사지를 각각 유사의료행위와 의료행위(한의사의 외치요법)로 보아 각각 의사와 한의사면허를 획득해야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제다.
척추마사지사는 미국, 유럽, 중국, 말레이시아 등 전세계 100여 국에서 의과대학이 아닌 전문교육과정을 통해 배출하는 서비스업 전문 일자리라는 게 대한상의의 설명이다.
대한상의는 "보건산업분야에 대한 과도한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인체에 무해한 눈썹문신 등의 단순 미용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국가 자격제도를 도입해 유망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10년간 제조업의 단위노동비용을 살펴보면 주요 선진국이 -14.3%(미국)에서 최대 -30.2%(일본)까지 하락했지만 우리는 거꾸로 1.8% 상승했다. 대한상의측은 "파견업종 제한, 파업시 사업장 점거허용 및 대체근로제한 등 선진국에 없는 각종 규제를 유지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지주회사규제와 대기업 각종 출자규제 등 선진국에 없는 규제들을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고도 대한상의측은 주장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성역화된 이들 부문에 대해서도 보다 합리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며 "선진국 기업이 널리 활용하고 있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발행 등 적대적 M&A 방어장치의 도입을 허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