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역사 속의 독도' 계절학기 첫 수업이었다.
그리고 한국 축구대표팀의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사상 처음 도입된 32강 토너먼트 그 진출 여부가 단 90분에 걸려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학생들의 시선은 이미 대형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교재를 든 내 손이 허공에 멈췄다.
나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독도를 가르친다 한들 아이들의 머릿속에 역사가 남을 리 없었다.
나는 조용히 교재를 덮었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응원하라고 말했다. 어두운 강의실을 초록빛 피치가 가득 채웠다.
학생들은 공 하나를 따라 숨을 죽이고 시선을 고정했다.
전반전 45분, 학생들의 눈은 저 멀리 월드컵 경기장을 향해 있었고 내 마음은 그보다 더 먼 곳을 향해 있었다.
동해 끝의 섬이었다.
경기는 패배로 끝났다.
세상은 곧 말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왜 손흥민을 벤치에 앉혀두었는가. 왜 후반에야 투입했는가.
비판이 칼날처럼 쏟아졌다.
감독의 판단은 결과 앞에서 낱낱이 발가벗겨졌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일 형세를 읽고 패를 던지는 일.
리더십의 무게가 그 90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문득 약 330년 전 경북 의성의 한 선비를 떠올렸다.
조선 숙종 때의 일이다. 17세기 후반 울릉도와 독도를 두고 조선과 일본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터졌다.
이른바 ‘울릉도쟁계’(鬱陵島爭界)이었다.
울릉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조선 어민들이 왜인들과 충돌하면서 불거진 이 분쟁은 조정을 뒤흔들었다.
강경론과 신중론이 맞부딪혔다.
군사를 보내 왜인을 축출하자는 목소리와 외교적 파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조정은 분열했고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숙종은 이 문제를 대신들의 말싸움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임금은 과거시험 최고 단계인 책문(策問)의 주제로 울릉도·독도 분쟁을 직접 출제했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에게 물은 것이다. 두 섬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영토의 명운을 걸고 인재를 시험한 것이었다.
의성 출신 선비 신덕함(申德涵)이 붓을 들었다.
심세득인(審勢得人).
형세를 정확히 살피고[審勢]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을 얻어 맡기라[得人]
짧고 서늘한 네 글자였다.
영토를 지키는 일의 본질은 감정적 구호가 아니다.
냉철하게 판을 읽는 안목과 사람을 알아보는 깊고 오랜 눈에 있다.
울릉도·독도 분쟁을 풀어낸 진짜 힘은 군사력도 외교적 언변도 아니었다. 때를 알고 사람을 알아본 리더십이었다.
그 통찰이 약 330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낡지 않았다.
경북의 땅에서 나온 말이 독도의 파도만큼 오래 살아남았다.
축구장 위의 감독이나 영토를 지키는 국가나 질문의 본질은 같다.
월드컵은 4년마다 돌아온다. 그러나 독도는 하루도 쉬지 않는다.
일본은 수십 년째 치밀하고 조용하게 국제사회에 사료를 쌓아왔다. 영토전시관을 넓히고 다국어 홍보를 멈추지 않으며 장기전을 펴고 있다.
교과서를 바꾸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반면 우리는 도발이 있을 때만 뜨겁게 끓다가 식었다.
감독의 전술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독도를 지킬 리더십에 대해서는 얼마나 깊이 생각해왔는가.
축구는 주심의 호각과 함께 끝난다. 승패가 결정되면 그것으로 된다.
독도에는 종료 휘슬이 없다.
매 순간이 연장전이다.
숙종이 책문으로 던졌던 그 질문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돌아온다.
형세를 읽는 눈을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세우고 있는가. 독도를 지킬 사람을 제자리에 놓고 있는가.
심세득인. 그 네 글자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지금이다.
그날 강의실에서 어둠 속에 서서 나는 오래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사 속의 독도'를 가르치러 온 자리였으나 그날 나는 오히려 현재 속의 독도를 보았다.
저 청춘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독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파도에 씻기고 바람에 깎이면서 누군가 기억해주기를 기다리며 홀로 서 있을 것이다.
동해의 파도는 오늘도 그 섬을 두드린다. 쉬지 않고, 조용하게.
― 월드컵 함성 속에서 떠오른 동해 끝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