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배 국립해양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워싱턴의 서고는 조용했을 것이다.
형광등 아래 줄지어 선 철제 서랍들. 그 안에 잠든 수천 장의 문서들. 누군가 그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손이 떨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한 장의 문서 앞에서 멈췄다. 1948년 미군 당국이 독도를 "한국의 일부"로 기록한 문서였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깊숙한 서고에서 발굴된 이 기밀문서는 독도 영유권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근거다. 그것을 찾아낸 손은 국가의 손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홀로 서고를 뒤진 개인 연구자의 손이었다.
반가웠다. 그리고 서늘했다.
독도 자료 발굴의 역사는 언제나 그랬다. 1877년 일본 최고 행정기관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스스로 밝힌 태정관지령도, 1951년 일본이 독도를 자국 부속도서에서 제외한 총리부령과 대장성령도, 모두 개인의 손으로 어둠 속에서 꺼내졌다. 자료는 늘 있었다. 찾는 사람이 드물었을 뿐이다. 국가는 독도를 외쳤고 자료는 개인이 찾았다.
이 역설이 아프다.
일본을 보면 더 아프다. 일본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취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약한 주장을 강한 시스템으로 떠받친다. 정부와 지자체 교과서와 도쿄 한복판의 전시관 언론과 민간단체가 수십 년째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도발하고 기록하고 교육하고 반복한다. 지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강한 근거를 손에 쥐고도 그것을 축적하고 교육하고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구조가 빈약하다. 도발이 있을 때만 끓고 잠잠해지면 식는다. 한국은 개인의 집념에 기대고 일본은 조직의 시스템으로 밀어붙인다.
열정의 총량은 우리가 결코 적지 않다. 전략의 밀도가 너무 얇다.
1948년 6월 8일, 독도에서 우리 어민들이 폭격으로 스러졌다. 정부 수립 전이었다. 국가가 없었다. 지킬 시스템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 예고 없이 죽었고 시신 일부는 수습조차 되지 못했다.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677호는 독도를 일본의 행정권에서 제외하고 있었으나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어민은 아무도 없었다. 법은 있었고 현실은 달랐다. 그 비극은 독도 영유권의 증거이기 전에 국가가 약하고 시스템이 없을 때 가장 평범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다.
우리가 독도를 붙드는 이유는 바위섬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마음 놓고 고기를 잡고 어머니가 저녁 밥상을 차리며 아이들을 기다리는 그 작고 고요한 일상이 이 땅에서 계속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도는 분노의 대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끈질기게 묻는 질문이다.
그러므로 독도는 구호로 지킬 수 없다.
미국 문서고의 기밀 서류 일본의 법령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 국제법 판례를 함께 읽어야 한다. 우리끼리 확신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상대의 논리를 알아야 반박할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독도가 국수주의의 구호를 넘어 세계가 이해하는 보편의 언어가 되려면 우리부터 독도를 더 넓고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우리말 자료만 읽으며 국내용 분노를 터뜨리는 데 머문다면 국제사회의 법정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끝내 외로울 것이다.
이번 문서 발굴이 던지는 진짜 숙제는 거기에 있다.
자료를 찾아낸 그 연구자는 아마 지금도 어딘가의 서고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다음 서랍을 열기 위해. 그 손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 대학이 함께하고 국가가 뒷받침하고 시민이 관심을 보낼 때 개인의 집념은 비로소 국가의 힘이 된다. 독도를 언제까지 개인의 외로운 열정에만 맡겨둘 것인가. 국가와 대학과 시민이 함께 움직이는 지식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숙제다.
독도는 이미 한국 땅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독도를 아는 힘이다. 설명하는 힘이다. 그리고 혼자 서랍을 여는 손에 조용히 다가가 함께 열어주는 공동체의 힘이다.
워싱턴의 서고는 오늘도 조용할 것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서랍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