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딸을 방화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24년 가까이 감옥에 갇힌 채 힘겨운 법정투쟁을 벌여온 이한탁(79)씨가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소재 필라델피아 연방 지방법원의 마틴 칼슨 판사는 29일 이 씨 사건에 대한 증거심리를 열고 검사측으로부터 새롭게 증거로 채택된 과학적 수사방식이 더 정확하다는 답변을 받음으로써 과거 증거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이한탁구명위원회가 밝혔다.
뉴욕중앙일보 등 한인매체에 따르면 칼슨 판사는 이날 심리 내용이 담긴 권고서(Recommendation)를 작성해 이번 사건의 최종 판결을 내려줄 윌리엄 니닐론 판사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검찰이 과거 화재감식 증거가 불확실할 수 있다고 인정한데에는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뉴욕시소방국(FDNY) 화재 수사관 출신인 존 렌티니 박사의 증언이 큰 역할을 했다. 렌티니 박사가 제출한 증거는 최신 현대 과학 기법으로 조사해 작성한 것으로 당시 화재가 방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당시 검찰은 이씨의 옷과 장갑 등에 휘발류와 화학물질 등이 합성된 발화성 성분이 검출됐다며 미리 방화를 준비했다고 주장했지만, 렌티니 박사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각기 다른 물질이 검출됐다.
손경탁 이한탁구명위원회장은“이 씨의 무죄가 사실상 입증돼 너무 기쁘다. 무죄가 최종 판결되면 위원회 모임을 소집해 이씨가 출소한 뒤 주거할 장소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이한탁씨가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된 것은 지난 1989년 7월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퀸즈 엘름허스트에 거주하던 이한탁(당시 55세)씨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대학생 큰딸(당시 20세)을 기도로 치유해 보려고 펜실베니아 포코노 기도원에 갔다가 한밤중에 발생한 화재로 딸을 잃게 됐다.
당시 순복음뉴욕교회(현 프라미스교회) 소유의 헤브론 수양관은 여러 개의 캐빈(오두막) 형태로 돼 있었고, 새벽 3시에 발생한 화재로 딸을 구하려고 허둥대던 이한탁씨는 불길 속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 뛰쳐나오고 말았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이한탁 씨는 초기수사 때부터 방화자로 지목돼 1급 살인과 방화혐의로 기소, 1심에서 감형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수사관은 이씨가 딸을 살해할 목적으로 64갤런이나 되는 휘발유를 기도원에 뿌리고 도망쳐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한탁씨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진 후 한인사회에서는 구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재판과정에서 무시된 자료들을 증거로 채택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무죄입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렌티니 박사의 화재 감식자료는 화재 직후 작성됐지만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단 한 번도 법정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다가 지난해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