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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기억을 걷는 속도..
문화

포토에세이 : 기억을 걷는 속도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1/13 16:55 수정 2022.01.13 16:56

 

화진리. 아스팔트 위 ‘천천히 30’의 큰 글씨가 아니더라도 해안의 풍경은 저절로 서행하게 만든다. ‘빨라도 30’으로 바꿔 읽어본다. 소나무의 긴 행렬이 잠깐 끊기고,  모래사장이 바다와 수평으로 선을 만들었다.
강력한 자기장에 빨려드는 것처럼 모래알들이 바람에 휘몰아친다. 가보지 못한 사막의 바람을 연상한다. 덮칠 듯 내닫던 파도는 하얗게 분무 되어 흩어진다. 그 풍경 안으로 사람이 무심히 들어온다. 스틱을 모래에 꽂으며 바람과 맞서 걸어간다. 느릿느릿 그가 걸어가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일지도. 앵글에서 사라지는 그에게 ‘힘내요!’라 말한다. 전달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영하의 날씨에 노출된 손가락이 아리다. 차로 돌아와 뜨거운 물이 담긴 종이컵을 손으로 감싸 쥔다. 추울수록 따뜻함이 더 간절한 법이다.
‘천천히 30’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몰입 후의 방전된 상태에서 훅! 들어오는 무언가는 때론 큰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선은 길을 따라 끝닿은 지점에서 멈춘다. 오후 네 시 즈음의 햇살이 잠시 머물고 있다. 창밖 세상을 구경하는 엄마가 앉아있을 의자에도 머물거나 지나갈 햇살이다. 
구순을 넘긴 엄마의 하루가 지나는 속도를 가늠해본다. 굽은 허리를 유모차에 지탱하며 마을회관으로 가던 일이 코로나로 사라졌다. 더디게 가는 시간은 엄마의 낮잠을 늘렸고, 했던 말을 반복하는 횟수도 늘렸다. 텔레비전 볼륨은 점점 높아진다. 
아침에 봤던 드라마의 내용을 하루 서너 번은 꼭 되짚어 본단다. 기억을 붙잡으려는 엄마의 방식이다. 기억해내며 스스로 안도하는 표정을 지을 때 엄마는 입술에 힘을 주어 말한다. 기억을 걷는 엄마의 속도는 어쩌면 ‘천천히 30’일지도.
엄마의 볕이 사라지기 전에 시동을 건다. 엄마의 기억 속으로 침투할 참이다.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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