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아베신조 일본 총리에 대해 기억할 것이 있다. 아베 총리가 수상으로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나는 아사히 신문에 기고한 바 있다. 2006년 6월 제90대 총리에 취임한 아베 신조 수상은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를 표방했다. 여기서 ‘아름다운’은 일본 개조를 의미한다. 보수의 모습, 미국과의 관계,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외교, 사회보장의 미래, 교육의 재생, 진정한 내셔널리즘의 개념 등에 대한 아베 정책의 핵심을 밝힌 것이다.
필자는 당시 한국 기업 도쿄 주재원이면서 와세다대학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재학 신분으로 아사히 신문에 기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2006년 10.26자). 기고문 제목이 ‘아름다운 아시아 만들기’로 아베 수상에게 건의하는 형식이었다.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해 환기시키며 세 가지에 대해 제언을 했다.
첫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 달라. 북한 핵 앞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입장에 놓여 있다. 야스쿠니 참배는 한일양국의 결속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자유무역협정을 가속화하여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중일 3국 철강 기업간 제휴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중국을 포함한 3국간 협력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 달라. 16년 전 필자의 제언이 여전히 유효할 정도로 아시아 경제 공동체 구상은 실현되지 않고 일본의 입장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아베 수상 두 번째 집권기간(2012.12~2020.9) 정책이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위안부 등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역대 일본 총리중 가장 희박하였고, 2019년 7월 일본이 취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대한 수출규제는 양국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우리 나라 젊은이들의 반일감정이 폭발한 것도 이 때부터다. 유니클로, 도요타, 혼다, 닛산, 필기구, 가전 등 일제 상품 불매운동이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중학교 과정을 일본에서 보낸 딸과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대립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아베 신조 전 수상을 저격한 범인은 41세 전 자위대원이다. 정치적 견해가 원인은 아니며 범인의 어머니가 심취한 종교단체를 아베 전 총리가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저격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속보 뉴스를 보고 사태가 심각할 것으로 짐작했다. 쓰러져서 심폐기능이 정지되었다는 자막에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베 씨가 이를 극복할 체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다음으로 일본 사회의 매뉴얼 중시 관행이 사상 초유의 일본 총리 저격사건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발생 5시간만에 공식 사망 발표가 나왔다. 두 가지 정도를 짚어보게 된다. 하나는 경호 문제다. 일본은 전직 정부수반에 대한 경호 규정이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번 선거 유세도 360도 완전히 오픈된 장소에서 지원 유세를 하게된 사실을 경호 전문가들이 뒤늦게 지적하고 있다. 안전전담 특별 경찰이 현장에 한 명 배치되어 있었지만 범인이 유유히 걸어 나와 요인과 3미터 위치에서 총기를 꺼내들기까지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최초 총성이 있고도 아무도 즉각 제지행동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 총격으로 가슴 정면에 관통상을 당하고 말았다.
또 하나는 의료진 대응이다. 현장에서 긴급 처치, 환자 이송에 걸린 시간, 응급실에서 대처 등 그 정도 상처를 과연 살려낼 수 없었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 이국종 교수나 낭만 김사부가 있었으면 살려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직 일본 언론에서 나오는 얘기가 없고 담당 의료진에게는 실례이겠으나 왠지 일본 특유의 매뉴얼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장례위원장으로 정부와 자민당 합동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아베 총리의 죽음이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권자들 동정표와 보수 결집 효과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압승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가능한 일본 만들기에 걸림돌이 되는 헌법 9조 개정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수상의 죽음이 일본 역사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과의 외교는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정가 관계자들의 방문이 이어져 관계개선 기미가 고조되고 있다. 평소 반한기류가 강한 아베 정책에 대한 환기로 한일관계가 다시 경색국면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생기는 것은 피해야 한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일본 여행부터 가겠다는 목소리들이 많은데, 일본 정부의 문호개방 지연으로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일본 내부의 혐한 기운을 조장하고 한국의 반일 감정에 불을 지핀 정책 지휘자로서 아베 수상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장수국가 일본에서 67세라는 나이로 비열한 만행에 희생당한 한 인간의 허망한 죽음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을 국수주의 관점에서 매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베 씨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자신이 고교 3학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란 소설을 다루고 있다. 침묵의 세계로 영면에 들어간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