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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흐린 채로 뷰파인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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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흐린 채로 뷰파인더에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8/11 18:28 수정 2022.08.11 18:32

‘새벽 다섯 시. 개풍약국 앞. 출사.’라고 알림이 뜬다. 서둘러 집을 나선다. 묵직한 두통이 느껴져 관자놀이를 누른다. 지난밤, 열대야에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후텁지근한 밤공기가 몸에 달라붙어 끈적였다. 냉장고 문을 열자 맥주 캔에 성에가 맺혔다. 잠결의 갈증에 생수보다 캔 맥주를 택한 이유다. 뚜껑 따는 소리의 명쾌함은 이미 반은 마신 거나 다름없다. 살얼음이 낀 맥주는 열대야의 눅진한 더위를 잠시 잊게 했다. 출사를 깜빡 잊은 나는 휴일 아침의 늦잠을 작정하며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평소의 얕은 주량을 넘겼더니 두통이 남았다.
다행히 약속 시간 안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이 오기 전이라 같이 간 유미코와 시장 입구에 서 있다. 사람들이 ‘호야’와 ‘포키’를 부르며 지나간다. 호야는 채소를 파는 사장님의, 포키는 모자를 파는 사장님의 반려견이란다. 그 근처에서 호야와 포키를 모르는 사람은 나와 유미코 밖에 없는 것 같다. 호야는 천연덕스럽게 유미코의 치맛자락에 냄새를 맡는다. 포키도 금세 따라붙는다. 옆에 있던 상인들이 처음 본 장면이 아닌 듯 말한다. 그들의 일상에 호야와 포키가 함께 한 지 오래란다.
일행들이 다 모이고 새벽시장 이곳저곳을 살핀다. 장사 준비를 하는 상인들의 노련한 몸놀림은 그들의 경력을 드러낸다. 전날 싸 두었던 리어카의 짐을 풀거나, 뒤집은 고무통 위로 수북이 단배추를 쌓거나, 살갗이 번들거리는 갈치의 신선함을 돋보이게 진열한다. 도넛 가게에서는 갓 튀겨낸 꽈배기가 기름을 빼고 있다. 건조되는 가자미 앞에 두 대의 선풍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식자재 상회의 전광판 글씨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할매묵집의 불빛이 어두운 골목을 밝힌다. 두 평 남짓 속 옷 가게의 아주머니는 뒤돌아 앉아 단장 한다. 허리 보호대를 차고 손거울을 들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살아가느라 앙다문 입술을 떠올린다. 새벽, 시장 안에는 물건들과 그들의 일상이 진열되고 있다.
횟집 골목을 지나니 동빈내항이 보인다. 잔뜩 흐린 날씨다. 정박한 어선들의 반영조차 고요하다. 갈매기의 움직임에 반영이 잠시 일렁거릴 뿐이다. 마스크를 낀 얼굴에 열기가 후끈하다. 뷰파인더에 담긴 내항의 풍경을 본다. 두꺼운 구름에 갇힌 하늘빛이 투박하다. 밤새 조업하고 돌아온 어부들의 단잠과 새벽부터 설치는 상인들의 두둑해질 앞치마를, 그리고 귀한 먹거리로 채워질 소비자의 장바구니를 기대한다.
세상 한 모퉁이를 담을 수 있는 1초의 순간이 고맙다. 사진을 보며 내가 보는 장면을 누군가에게 공유한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위태롭게라도 유지되는 지금의 일상이 감사한 아침이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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