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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두려움의 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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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두려움의 순간은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09/22 18:06 수정 2022.09.22 18:15

“영아, 너 여기 와볼래? 우와, 완전 장관이다.”
내가 서둘러 송도 다리로 가게 된 이유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니 친구의 목소리가 왜 들떴는지 알 것 같다. 다리 위에는 이미 카메라 삼각대가 여러 개 세워져 있다.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태풍의 북상 소식이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고 있다. 강한 태풍의 세력에 큰 피해를 예측하기도 한다. 정박한 어선들이 빼곡한 동빈내항의 모습은 태풍 소식과는 무관한 듯 평온하다. 태풍 전야의 고요라고 했던가. 태풍을 견뎌낼 비장한 각오 대신 미동 없는 고요가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긴장감이 팽팽하다. 넓은 바다의 물살을 거침없이 가르던 선박들이 선체를 바짝 맞대고 있다. 선주들은 양쪽 선박에다 밧줄을 엮어 놓았다. 태풍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엮은 것처럼.
내게 두려움의 감정이 또렷이 기억되는 오래된 장면이 있다. 계절은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빨랫줄을 묶은 바지랑대가 마당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엄마는 바다를 수차례 내다본다. 전봇대에 사방으로 달린 마을 방송 스피커가 요란하게 울렸다. 마을 주민 모두 ‘날개(방파제가 있는 해변)’로 모이라는 이장 아저씨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엄마는 정신없이 뛰어갔고, 그런 엄마를 따라 나도 뛰었다. 엄마는 뒤돌아보며 집으로 가라 말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날개’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아버지가 탄 배의 뱃머리가 보이고 사라질 때마다 안도와 두려움이 너울을 탔다. 배에는 아버지 말고도 일고여덟 명의 아저씨들이 같이 타고 있었다. 만약 배가 뒤집히면 아버지의 아픈 다리로는 헤엄을 못 칠 것만 같았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보다 더 큰 소리로 우는 것밖에 없었다.
비바람은 점점 거세졌고 파도의 너울은 뭍 가까이 들어온 배를 당겼다 밀었다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배는 파도와의 사투 끝에 방파제 안으로 들어왔고 굵은 밧줄이 뭍으로 던져졌다. 어른들은 배를 올리는 로크로(도르래)에 밧줄을 걸었다. 두 개의 긴 나무를 여럿이 부여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장배의 무게에다 파도의 힘까지 보태지니 로크로의 축이 흔들렸다. 어른들은 다시 힘을 모았다. ‘이영차!’. 로크로는 삐거덕대며 서서히 돌기 시작했고 자갈에 놓인 둔대 위로 배의 선두가 올려졌다. 배가 둔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어기 영차, 어영차, 어영차’ 소리가 빨라졌다. 드디어 배는 육지에 안착했고, 사람들은 얼싸안고 함성을 질렀다. 배에서 내린 아버지와 아저씨들은 자갈위에 누워 한동안 가쁜 숨만 내쉬었다. 그때 어른들은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아주 여러 번 했다.
동빈내항 가득한 선박들도 천만다행인 적이 있었을까. 예측하기 어려운 바다에서의 고된 작업 중에 어찌 그런 일이 없었을까. 그럴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는 건 아마도 함께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종교든 신이든. 삶 속 태풍의 순간에 오롯이 혼자라면 그 두려움을 어떻게 할까. 함께하는 무엇이 있어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태풍을 기꺼이 떠나보내길. 내일이면 잔잔해진 바다로 항해하는 선박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길,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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