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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걸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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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 걸어간다는 것

일간경북신문 기자 gbnews8181@naver.com 입력 2022/12/15 16:51 수정 2022.12.15 16:52

모래 위에는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의 구분이 없다. 걸어간 흔적만 남는다. 그 흔적마저도 바람에, 파도에 사라진다. 모든 상황이 리셋 되는 것처럼 말이다. 발자국이 없는 모래 위를 걸을 때면, 오롯이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기분이다.
이십 년 넘게 한길을 걸어온 사람은 무조건 인정한다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 말은 스스로 하는 위로처럼 들렸다.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 일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 잃는 것 보다 크다 여기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이 크고 작은지의 판단은 각자 다르다. 현실로 치우치느냐 이상으로 치우치느냐에 달렸다. 아이들을 건사하고 생활을 하려다보니 나 또한 이십 년을 넘게 여전히 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연봉이 많다거나 누가 봐도 그럴듯한 직장은 아니다. 가끔 현실에 묶여있는 것 같은 갑갑함에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내게 주어진 곳이라 여긴다. 어느 순간, 이상이 현실보다 우세가 되는 시점이 찾아올 수도 있다. 늘 그 순간을 기대한다는 것이 밥벌이가 측은해지는 이유다.
휴일 오후, 문집과 천일홍 다발을 안고 그녀가 찾아왔다. 내게 꼭 전해주고 싶었다는 말에 감동한다. 오랫동안 간간이 봐온 사이지만 여느 때 보다 빛이 난다. 늘 갈망했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하는 그녀의 입매가 야무지다. 어느 날 읽은 한 권의 책이 그녀에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했단다. 탄탄하게 자리 잡은 일을 접고, 꿈꾸던 그것에 도전 하게 된 이유를 담담하게 말한다. 일단 시작 해보니 새로운 길이 또 열렸다며 감사해한다. 그 용기가 부럽다.
오래전 직장을 그만둔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한다. 너무 오래 있는 것 아니냐, 평생직장이냐, 며 농담처럼 던진다. 순간 무능해진 느낌이 들어 당황한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내가 현실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의 일이지 않은가. 직업은 생활의 수단으로, 나머지 시간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무수히 많은 누군가도 나름의 길을 가고 있다. 모래 위로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다. 길을 헤매던 어떤 이가 찍힌 내 발자국을 따라 걸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묵묵히 걷고 있다.

 

 

소정 (嘯淨)<br>▶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br>▶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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