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집에서는 나태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곳곳에 진을 쳤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외면하지도 드러눕고 싶은 욕구를 떨치지도 못한다. 일찌감치 노트북을 챙겨 나선다. 주위를 선회하는 약간의 소음도 나에게는 오히려 집중에 도움이 된다.
카페로 들어서자 아르바이트생이 반갑게 맞아준다. 커피를 주문하고 거의 지정석이라 해도 될 자리에 앉는다. 창가에 일자로 놓인 테이블이 있는 자리다. 평소 비어있던 옆자리에 가방이 놓여있다. 가방에 달린 둥근 배지가 눈에 띈다. 배지에는 ‘매일매일 공부하는 할머니’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추리닝 지퍼를 목까지 올린 채 돋보기를 끼고 ‘종의 기원’을 읽고 있는 분이다. 풍기는 깐깐한 이미지에 보통 분은 아닐 거라 짐작한다. 쉽게 말을 붙일 수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카페에 온 이유는 혼자 집중할 시간을 원하던 터라 상관없다. 그러면서도 배지의 글귀를 자판으로 친다. 이어 멋지다, 에 느낌표까지 붙이면서.
오후가 되니 따갑게 닿는 볕이 부담스러워 블라인드 줄을 당겼다. 어쩌나, 내 쪽이 아닌 옆쪽의 블라인드가 내려지고 만다. 민망스러워하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블라인드 줄까지 당겨준다.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그분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라 했던가. 이번 3초 판단의 결론은 깐깐하고 명확한 어른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완전 오류는 아니라 생각이 든다. 다만 배려와 성실함이 더 많이 베인 분인 듯하다. 평소 사람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기질과 품성을 가지고 있기에 타인을 내 잣대로 구분 짓는 것은 관계에 대한 월권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말하자면 그것을 매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그분은 그랬다.
정년퇴직 후,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에게 힘을 보태고자 어린 손녀를 돌봐주신단다. 손녀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자 짬짬이 책을 읽고 공부를한다고 했다. 그분의 노트에는 매일 한편씩 외우는 시와 중국어를 공부한 흔적, 낙서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훌륭한 펜 드로잉 작품도 있었다. 끝이 닳은 노트는 모래 언덕을 보는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 바람에 의해 운반된 모래가 켜켜이 쌓여 해안에 만들어진, 하루아침에 만든 인위적인 모래더미가 아닌 알알이 모래가 다져진 언덕 말이다. 공든 시간이 만든 결과물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결과물이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이른 저녁 하늘에 모래언덕의 풍경이 떠오른다. 나지막한 모래 능선과 전깃줄에 내다 걸린 갈대꽃이 고운 선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올 것이다.
그 노트를 떠올리면 부끄러워진다. 발등에 떨어져야 벼락치기 하듯 해치우는 나의 습관이 비교되어서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새해 계획을 세워본다. 다이어리를 펼쳐 꼼꼼히 적어간다. 계획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이다. 다짐은 마음이나 뜻을 굳게 가다듬어 정하는 것이다!
소정 (嘯淨)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 ‘에세이 문’ 회원 ▶ ‘포항여성사진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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