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현재 해외 조력 사망을 직접 규율하는 법이 없다.
해외 조력 사망은 환자 개인의 결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료기록 준비와 번역, 해외 체류 상담, 비용 마련, 출국 준비와 동행에는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이 수반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조력 사망이 현실화한 만큼, 우리나라도 찬반논쟁을 넘어 생애말기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을 선택한 한국인의 사례가 알려지면서, 의사조력사망은 더 이상 해외의 낯선 윤리 논쟁만은 아니게 됐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5년 말까지 한국인 11명이 조력 사망을 지원했고, 144명의 한국인이 서비스 이용을 문의하거나 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처: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디그니타스)
우리의 경우에는 정보 제공·비용 지원·출국 동행이 어느 범위에서 형법상 자살방조에 해당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문제인 동시에 가족·지인이 감당해야 할 법적 책임의 문제이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 유형과 국내 입법의 방향성 검토 보고서”를 통해, 통증관리와 호스피스·완화의료, 돌봄과 사회적 지원을 먼저 보장한 뒤에도 남는 극단적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를 위해 의사조력사에 대한 입법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을 제안했다.
보고서의 해외 의사조력사 제도 사례를 보면, 의사조력사망 결정이 신체적 통증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문제는 아니다.
돌봄 의존과 사회적·경제적 취약성, 판단능력 평가의 불확실성 등 다양한 기준을 함께 다뤄야 하는 복합적 과제이다.
예컨대 미국 오리건주의 2024년 통계는 조력사망이 단지 통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조력사망 선택의 이유로는 ▲자율성 상실 ▲일상 활동능력 저하 ▲존엄 상실 등이었다.
통계표에서 응답자의 약 42%는 ‘가족·친구·돌봄 제공자’에게 부담이 되는 점을 우려했다.
이는 환자의 선택에 돌봄 의존, 관계 변화, 경제적 부담, 사회적 고립이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조력 사망의 적용 대상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다.
치매나 정실질환 환자의 경우에는 조력 사망을 스스로 판단할 수 없고,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2024년 안락사 보고에는 치매 관련 사례 427건과 정신질환 관련 사례 219건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치매 환자가 자신의 요청과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일관되게 표현했는지, 정신질환 환자의 고통이 치료로 완화될 수 없는 상태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자연사가 임박하지 않은 신청자에게 별도 평가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
환자의 요청이 외부 압력 없이 자유롭고 충분히 숙고된 것인지, 치료·돌봄·주거·경제적 지원을 이용할 수 있음에도 내린 결정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정착을 통해 임종기 의료결정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하지만 치료의 중단을 넘어 의료인이 사망 시점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의사조력사망까지 허용할 것인지는 앞으로 별도의 법적·윤리적 검토가 먼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6년 3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약 330만 명,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은 누적 50만 건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을 시행부터 집계된 상황이다.
국회에서도 조력존엄사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이 법안은 대상자 심사, 숙려기간, 반복적 의사 확인, 심사위원회와 의료인의 면책 등을 별도로 규율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의료계와 의료윤리계에서는 생명경시와 취약집단 보호 약화, 의료윤리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하는 것과 의사의 도움으로 사망 시점을 앞당기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임종과정에서 치료 효과가 없는 생명유지의료를 더 이상 시행하지 않는 제도인 반면, 의사조력사망은 의료인이 치사약을 처방·제공하거나 투여하는 구조를 전제한다.
현행 형법상 전자는 별도 법률에 따른 의료결정으로 인정되지만, 후자는 자살방조 또는 촉탁·승낙살인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의사조력사제도'는 환자가 통증·돌봄·빈곤·고립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완화의료와 사회적돌봄 체계를 동시에 점검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의사조력사망 논의는 단순한 허용·불허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국가의 생명보호의무, 의료인의 윤리와 양심의 자유, 가족의 부담과 형사책임, 장애·정신질환·경제적 취약성 문제가 한꺼번에 맞물린다.
특히 통증 조절, 호스피스·완화의료, 심리·사회적 상담, 가족돌봄, 소득·주거·의료비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선택은 진정한 자기결정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어 주의도 필요하다.
여하튼 의사조력사망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반적 '죽을 권리'가 아니라, 다른 수단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극단적 고통에 대한 예외적 선택지로 검토되어야 한다.
제도 도입을 서두르기보다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보완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와 돌봄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상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