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에 북한이 개입됐다고 판단, 언론이 편승하지 않도록 하라는 친필 지시를 내렸던 사실이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17일 비밀해제된 1985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1985년 2월6일 일본의 역사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친필로 "북괴가 조총련을 이용해 일본 좌익계 노조 및 지식인을 이용, 한일 간의 이간을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교포 중 최씨라는 목사가 애국지사인 양 활동하며 교포와 한국민에게 자극적 운동을 전개하는 데, 주일대사 보고에 의하면 한일 이간의 목적이 있는 듯하다고 하니 외무부는 관계부처와 협조해 신중히 처리하시오"라고 지시했다. 이 문서 상단에는 전 전 대통령의 서명과 날짜도 적혀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친필 지시가 있기 사흘 전인 그해 2월2일 일본에서 출판노동조합연합(출판노련)이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실태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며 한일 관계와 역사 부문 시정이 미흡하다고 지적, 이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이에 대한 대응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선 1982년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한 내용이 역사교과서에 실리면서 당시 한일 양국 간에는 역사교과서 문제가 외교 문제로 비화된 상태였다. 중국에서도 난징대학살 등을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 반발하며 반일시위가 잇따르기도 했었다.
이런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의 친필 지시는 관계 부처에 전달됐다. 외무부는 이러한 지침에 따라 일본 출판노련이 조총련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춰 일본 내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에 북한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국내 언론과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출판노련을 기초로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신중한 보도를 유도하기 위한 브리핑도 열었다. 이후에도 외무부는 각종 보고서 등을 통해 "북한도 한일 간 이간책의 하나로 조총련 등을 통해 교과서 문제 확대 유도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 측 또한 한국의 관심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출판노련 등 좌익 노조단체가 정부를 중상키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점을 한국 정부에 강조했다.
당시 외무부 아주국장은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초치해 "일 정부의 검정이 진행 중인 현 단계에서는 양국의 신뢰관계에 비춰 검정 결과를 깊은 관심을 갖고 조용히 기다리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우리(한국) 정부로서는 (어떻게) 이번 건이 재차 외교 문제화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 부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일본 측은 "양국 사정을 감안, 70~80점이 되더라도 나머지 20~30점은 한국 국내적으로 잘 처리해 줄 것을 부탁한다"며 "교과서 검정은 타국의 요청에 의해서 할 수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의 책임 하에 자주적으로 행할 것이며, 시정되지 않는 경우 곤란하다고 한다면 일본 측으로서도 정말 곤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