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거장 첼리스트 정명화(73·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와 '인간문화재'인 명창 안숙선(67)이 지역 마을에서 첫 하모니를 들려준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사장 유영학)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2016 예술거장과 함께 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8월19일 강원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서 열리는 '계촌클래식 거리축제' 개막공연에서 처음 협연한다.
정명화는 2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20년 전 한국에 돌아와서 연주를 하기 전까지 서양음악을 배우는 데 정신이 없었다"며 "그 때 판소리를 듣고 가슴 깊은 감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첼로가 노래(음악)를 잘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판소리가 그렇더라. 깊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정명화는 지난 1996년 동생인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과 함께 발표한 음반 '한(恨), 꿈, 그리움'에서 이미 국악을 다뤘다. 작곡가 이영조 작품인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등을 연주했다.
"장고와 처음으로 작업한 순간이다. 당시 장고를 치시는 분들 중에 클래식 악보를 읽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아 힘들었다. 하지만 즐거운 작업이었다."
지난해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젊은 음악가들이 클래식과 국악을 아우르는 프로그램도 선보인 정명화는 "외국 사람들이 협업을 보고 콤비네이션이 좋다고 했다"고 떠올렸다.
"이번 프로젝트는 더 기대된다. 안숙선 선생은 평소 존경한 분이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판소리를 서양 프로젝트로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안숙선은 "판소리가 대중과 만나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여러 장르를 통해서 판소리를 확대할 수 있다는 그녀는 "특히 정명화 선생과 만나는데, 첼로의 융성 깊은 성음과 판소리가 잘 맞는다"고 흡족해했다.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명화 선생이 공연하셨을 때 뒤에서 첼로 음악을 듣고 판소리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판소리가 첼로를 만나 다양하게 공연이 됐으면 한다."
정명화와 안숙선의 협업곡은 작곡가 임준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가 만든다. 클래식과 국악을 넘나드는 작곡가다.
임 교수는 "클래식과 국악의 두 장르를 융합하기 위해서는 창작곡이 필요하다"며 "두 선생님의 협연곡을 쓰는 건 영광이다. 판소리, 첼로, 피아노를 위한 세개의 사랑가"라고 전했다.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를 모티브로 해서 3개의 악장으로 작곡한다. 수백년 각자의 길을 달려온 판소리, 첼로의 장르에 대한 고민을 했다. 판소리는 국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성악곡이다. 첼로는 서양 현악기의 정점이다. 깊은 선율에서 성악적인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다. 안숙선이 예술거장으로 참여하는 '제2회 남원 비전 거리 국악축제'(6월 17~19일), 정명화가 예술거장으로 함께하는 '제2회 평창 계촌 클래식 거리축제'(8월 19~21일)로 나눠 진행된다.
'비전국악 거리 축제'는 '국악, 동편제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안숙선을 비롯해 판소리 채수정, 피리 명인 곽태규, 철현금 명인 유경화, 소리꾼 이자람 등이 출연한다. 앙상블 시나위, 청배연희단, The 광대 등도 힘을 보탠다.
'클래식, 계촌 마을 속으로'라는 타이틀을 내건 '계촌클래식 거리축제'는 첼리스트 박상민, 어쿠스틱 밴드 '신나는 섬',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 등이 출연한다. 계촌별빛 오케스트라, 계촌중학교 오케스트라 등도 나온다.
정몽구재단은 지난해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계촌리를 '클래식 마을', 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을 '국악 마을'로 정했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 예술감독인 이동연 교수(한예종 전통예술원)는 "지난해 첫해는 대형 축제의 성격이 짙었다면, 이번에는 마을 축제의 의미가 크다"며 "작은 무대를 여러 개 만드는 등 거리 축제에 의미를 두고 마을의 공간 디자인을 했다"고 전했다. "지역 주민들이 작년에는 관객으로만 축제를 지켜봤는데 이번에는 자체에 자발적인 참여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주민들은 지난해 행사에 대해 만족을 표했다. 주국창 계 촌클래식마을 추진위원장은 "계촌은 고랭지 채소를 주로 경작하는 전형적인 작은 마을이다. 전체 인구는 490명 가량"이라며 "작년에 현대차와 한예종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시작하고, 공연을 해주시면서 마을이 바뀌기 시작했다. 농촌에서 과연 클래식이라는 것이 통할까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큰 축제가 됐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폐쇄에 가까웠던 학교가 다시 살아나는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고민했는데 기반 시설 확충이더라. 클래식 공원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지금 공사 중으로 내년 8월에 완공된다"고 덧붙였다.
정몽구 재단은 지난해 이 프로젝트를 우선 3년 진행한다고 알렸다. 유영학 정몽구 재단 이사장은 "성과 평가에 따라 계속 할 수도 있고 확대할 수도 있다.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촌마을에서는 지역 학생들에게 클래식음악을 가르치는 마스터 클래스를 지난 3월부터 진행해왔다. 비전마을에서는 안숙선과 그녀의 제자들이 판소리 꿈나무를 위해 7월 25~29일 '전국 판소리 꿈나무 캠프'를 연다. 이정익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은 지난달부터 계촌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예술이 삶을 바뀌는 현장을 영상에 담고 있다. 11월 후반 작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