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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사필, 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사회

사필, 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뉴시스 기자 입력 2016/05/31 14:58 수정 2016.05.31 14:58

 

 

 

 

 


 “국가가 오래도록 태평하자 임시방편으로 하는 정사가 많았고, 기강이 문란해져 공공의 도리가 없어졌다. 조정의 각 관사와 지방의 관원들은 쓸데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서, 오직 권세가에게 들러붙어 좋은 벼슬에 오르고, 뇌물을 바쳐 좋은 명성을 얻는 것을 자신의 중요한 사업으로 여길 뿐, 국가의 일에 대해서는 남의 나라의 일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장수나 재상들은 편안히 놀고 즐기며 항상 은혜와 원한을 갚는 데만 신경 쓰다가, 변방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조정은 방비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변방은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왜적의 칼끝이 향하는 곳마다 패배하였다. 왜적이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오듯 쳐들어왔으니, 통탄스러운 마음을 견딜 수 있겠는가·” (명종실록 10년 5월16일,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을묘왜변과 조정의 대응)

‘사필, 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이 나왔다. ‘승정원 일기’의 대중교양서인 ‘후설’(喉舌·2013)에 이은 정통 역사 대중교양서 제2탄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철종 25대 472년 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1893권 888책이라는 방대한 양이다. 왕실의 동정과 임금의 언행, 조정에서 국사를 논의해 처리하는 과정에서부터 백성들의 풍속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기록돼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유산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한문으로 된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번역된 것은 1993년이다. 이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됐다. 실록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은 역사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됐고 또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사관은 7품 이하의 관원이다.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직한 예문관의 한림이다. 문과에 급제한 지 얼마 안 된 패기 넘치는 젊은이다. 임금과 가까운 자리에서 임금과 신하의 대화와 행동을 기록했다. 그리고 승정원을 거쳐 가는 국정의 주요 문건을 발췌한 뒤 공식 사초인 시정기(時政記)를 작성했다. 기록을 남기면서 사관은 현장의 목소리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꾸밈없이 적어 나가는 직필을 견지하고 왜곡된 시각의 곡필을 경계했다. 지존인 임금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사관의 기록은 두려워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사필이 지닌 힘이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다. 실록과 사초는 아무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도록 한 제도적 장치 덕분이다.

실록에는 사건의 시말(始末)이나 시비(是非)는 물론, 관직 임명에 대한 의견, 생전 또는 사후의 인물에 대한 평가 등 주관적인 의견도 실려 있다. ‘사신왈(史臣曰)’, ‘사신논왈(史臣論曰)’로 시작하는 사론(史論)이다. 사론이 수록돼 있다는 점은 조선왕조실록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조선 전기의 실록에만도 3400여건이 실려 있는데, 약 57%가 인물에 대한 논평이다. 임금과 신료의 잘잘못, 사건, 제도, 재이(災異)를 비롯해 당시 사회 모습에 대한 논평도 많다.

‘사필, 사론으로 본 조선왕조실록’은 사론을 통해 실록의 본질적인 가치를 짚고자 했다. 1부에는 실록 속 다양한 사안을 논평한 사론들, 2부에는 사관과 실록의 발자취를 실었다.

1부 ‘사론, 역사를 논하다’에는 ‘왕실을 논하다’, ‘신하를 논하다’, ‘사건을 논하다’, ‘제도를 논하다’로 주제를 나눠 38건의 사론을 실었다. 편마다 관련 배경이나 사건을 이야기하고 해당 사론을 소개하면서 집필자의 견해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사필, 역사를 남기다’는 ‘사관을 말하다’와 ‘실록을 말하다’로 주제를 나눴다. ‘사관을 말하다’는 역사 기록의 주역인 사관의 주요 업무, 선발 방식, 한림의 고풍(古風) 등을 다뤘다. ‘실록을 말하다’는 실록의 편찬 과정, 사고(史庫)의 위치와 노정, 실록의 활용 등을 다뤘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이명학) 콘텐츠기획실 하승현 실장은 “역사를 기록하는 붓, 사관의 기록정신을 통해 역사 앞에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써 역사가 발전적으로 흘러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조선을 바라보던 사관의 눈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는 눈을 얻으려 했다”는 출간의 뜻을 밝혔다.

“조선은 왜 사관을 두어 역사를 기록했으며, 선조들은 왜 우리에게 실록을 전해 주었을까요· 우리는 다음 세대에 어떠한 실록을 전해 주어야 할까요? 이 점이 우리가 지금 500년 조선 역사 기록의 중심에 섰던 사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조선의 사관이 남긴 사필이 시대의 과제를 통찰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사관(史官)을 일깨우는 중요한 매개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강대걸·강성득·곽성연·이규옥·정영미·최두헌·하승현·허윤만 지음, 김문식 감수, 김경희 자문, 이부록 그림, 396쪽, 1만3000원,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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