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의 공신력을 크게 훼손한 자에게는 엄중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 (한국여자농구연맹)
"향후 첼시 리와 그의 에이전트에 대해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하나은행)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의 첼시 리(27)가 혈통을 속여 국내 무대에서 뛴 것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강지식 부장검사)는 지난 15일 "첼시 리가 제출한 자신과 아버지라고 밝혔던 제시 리의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시즌 해외동포선수 자격으로 뛴 첼시 리에 대해 한국계가 아니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여자프로농구는 부모나 조부모가 한국 국적자일 경우, 국내 선수와 같은 신분으로 뛸 수 있도록 하는 해외동포선수 규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과 하나은행은 사과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지난 시즌 개막을 앞두고 첼시 리의 신분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를 기억하면 연맹과 하나은행의 사과와 해명이 어딘가 어색하다.
하나은행이 첼시 리 영입을 검토할 당시 일부 구단은 그의 신분과 조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의심을 품었다.
앞서 첼시 리를 영입하려고 했던 다른 두 구단은 첼시 리가 한국계라는 사실을 증명할 서류를 확보하지 못했다. 와중에 하나은행이 첼시 리를 영입한 것이다.
일찌감치 첼시 리 신분의 불확실성에 대해 인지한 두 구단은 이 같은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하나은행은 영입을 강행했다. 연맹은 그동안 해외동포선수의 신분을 확인할 때, 통상적으로 첨부하게 했던 일부 서류가 없었지만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몇몇 구단들은 펄쩍 뛰었다. 사무국장 회의, 이사회에서도 공론화하며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연맹은 타 구단들의 반발에 '선수를 빼앗긴 팀들의 하소연'이라는 뉘앙스로 사태를 정리했다. 첼시 리의 등록 근거는 하나은행이 제출한 서류뿐이었다.
신용이 생명인 금융권 소속의 팀이 미비한 서류를 제출하면서 첼시 리가 한국계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딱히 없다. 수사 결과가 가짜로 밝혀졌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있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은행에서 기본적인 입출금 통장만 만들려고 해도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 법적 효력이 있는 신분증을 확인한다. 첼시 리에 한해선 신분증 대신 가짜일지도 모르는 명함으로 대출까지 해준 셈이다.
신선우 총재가 이끄는 연맹은 "몇 개월에 걸쳐 수차례 확인했다. 서류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확신하며 최종적으로 첼시 리의 선수 등록을 승인했다.
주위의 지적과 의혹 제기를 모두 묵살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연맹의 공신력을 크게 훼손한 자에게는 엄중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다.
사기극을 펼친 첼시 리와 에이전트에게 당연히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연맹과 하나은행도 부실 검증의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