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을 내놓은 연상호 감독이 그의 전작들을 사랑했던 관객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변했다'일 것이다. 연상호는 '부산행'에서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에서 촘촘한 서사와 강렬한 캐릭터, 짙은 사회적 메시지를 동력 삼아 달렸다면 '부산행'의 이야기는 단선적이고, 캐릭터는 희미하고, 메시지는 옅었다. 대신 연상호는 장르영화의 쾌감을 내지르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니 연상호의 소수 팬(전작 두 편 관객 약 4만명)에게 그의 변화는 갑작스럽다.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그가 자신의 홈구장으로 돌아왔으니 이전의 연상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런 기대감이다.
좀비는 '서울역'이 그려놓은 현실에 대한 데칼코마니다. 영화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아수라장이 된 상황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대조하며 두 이미지가 어쩐지 비슷해 보이지 않느냐고 들이민다. 연상호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서로 물어뜯고 뒤엉키는 이 지옥도가 차라리 지금의 현실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 현실에 고통스러워하며 힘없이 고꾸라지는 것보다는 상대를 향해 한 번쯤은 달려들 수 있는 좀비가 되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체념이다.
연상호의 변화라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연 감독은 전작들에서 이미지가 아닌 서사로 극을 이끌었다. '돼지의 왕'과 '사이비'는 각각 '사회 계급'과 '카오스적 세계 속 믿음'을 여러 겹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서울역'은 다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혜선이 좀비를 피해 도망친다는 게 전부다. 대신 이 작품은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정신 팔리지 않고, 현실을 명확히 목격하게 한다. 그러니까 연상호는 이야기를 단순화하는 대신 좀비 출몰이라는 재난과 현실의 복마전(伏魔殿), 그 자체를 캐릭터이자 메시지 삼아 극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마치 '부산행'의 '좀비 기차'가 그 영화 최대 캐릭터였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서울역'에서 보여준 변화가 높은 영화적 완성도로 이어졌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이야기가 여러 가지 이미지들의 나열로 완성되다 보니 각각의 연결고리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발견된다. 영화 종반부 모델 하우스에서 펼쳐지는 반전은 충격적이지만, 앞선 러닝타임에서 인물들 간 감정을 충분히 쌓지 못하다 보니 충격을 넘어서는 울림을 주는 데 실패한다. 이는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보여준 뛰어난 결말과 비교되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어쨌든 연상호는 변화를 선택했고, 그 첫걸음으로써 '서울역'은 부분적이지만 성공적이다. '돼지의 왕'에서 '사이비'로 넘어가면서 연상호는 더 뛰어난 이야기 직조(織造) 능력을 보여줬다. '서울역'은 '서울역' 다음 작품에서 연상호가 보여줄,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을 더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