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사 영산회괘불도는 1702년 광흠(廣欽)이 수화승을 맡아 홍특(弘特), 각환(覺還)과 함께 제작하였고, 1934년 계홍(戒弘)이 중수하였다. 높이 943.3cm, 너비 732cm 크기의 총화면은 폭 60여cm의 삼베 13포를 이어 제작하였다. 중앙에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취한 석가모니를 묘사하였으며, 화기에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임을 명시하였다.
화면의 구성은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문수, 보현보살의 삼존입상을 가득차게 배치하고, 석가모니불의 두광 좌우에 다보불과 아미타불을 그리고 불제자 아난과 가섭을 작게 그려 넣었다. 이러한 구성은 1661년 간행된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의 영산작법(靈山作法)에 봉청되는 불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조선후기 괘불도에 주로 표현된 형식 가운데 하나이다. 1700년 제작한 내소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268호)이 형식을 표현한 시대가 가장 이른 괘불이며, 동일 도상으로 1722년 청곡사 영산회괘불도(국보 제302호), 1730년 운흥사 괘불도(보물 제1317호), 1745년 다보사 괘불도(보물 제1343호), 1749년 개암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269호), 1764년 대흥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552호) 등이 있다. 이 중 대흥사 영산회괘불탱을 제외한 4폭의 괘불은 의겸(義謙)이 수화승을 맡아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