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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경북신문

이한나 “비올라는 카멜레온 같아”..
사회

이한나 “비올라는 카멜레온 같아”

운영자 기자 입력 2017/02/19 20:01 수정 2017.02.19 20:01
‘2017 평창겨울음악제’서 첫 공연 눈길, 초등 5학년때 스승에 반해 비올라에 빠져 2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월튼의 '피아노 4중주 D단조' 3악장.
17일 오후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콘서트홀에서 재기가 넘치는데다가 결연한 멜로디와 리듬, 불쑥 튀어나오는 불협화음이 인상적인 이 곡에서 비올리스트 이한나(32)의 비올라 솔로가 울펴 퍼지자 분위기가 돌연 환기가 됐다. 이후 이어진 연주가 더 탄력을 받고 짙어진 이유다.
바이올린보다 약간 큰 비올라는 중석적인 음색이 특징이다 평상시 화려한 음색의 바이올린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간 음역을 담당해 독주도 드물다.
하지만 월튼의 '피아노 4중주 D단조'처럼 순간적으로 비올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한나는 이 비올라를 닮았다. 시원하고 소탈한 성격인 그녀는 비올라처럼 배려심이 많고 다른 사람과 잘 조화를 이루지만, 자신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그 몫 이상을 해낸다.
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논쟁이 떠오른다. 이한나의 성격이 비올라를 닮아 이 악기를 택한 것인지, 아니면 비올라를 연주하면서 성격이 이 악기를 닮게 된 것인지.
공연이 끝난 직후 만난 이한나는 "비올라의 매력은 말하기 힘든데…. 너무 저 같아서요"라고 웃었다. "그래서 매력이 있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비올라는 실내악에서 중심을 잡아요.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쏠리면 비올라가 왼쪽으로 기울고, 분위기가 오른쪽으로 쏠리면 비올라는 왼쪽으로 기울죠. 월튼의 '피아노 4중주 D단조'처럼 다른 악기 없이 비올라가 솔로를 들려주는 순간은 정말 꽃을 피우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어느 음악에도 잘 어울리는 카멜레온 같은 유연함도 있어요."
경북 구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한나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음악을 달고 살았다. 무용학원, 미술학원 등 각종 예술 관련 학원도 섭렵했다. 시립소년소년 합창단 단원이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예술학교인 예원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기 전 다양한 경험을 한 것은 그녀의 자양분이 됐다. "예원학교에 들어온 친구들은 다 목숨을 걸고 연습만 했던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비올라 연습보다 음악 안에서 다양한 것에 흥미를 가졌어요. 지금은 춤을 못 추지만 춤을 배운 덕분에 리듬감이 생긴 것이 예죠."
이한나가 비올라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악기의 매력보다는 스승인 비올리스트 오순화에게 반해 이 악기에 빠져들었다.
"악기 자체보다 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에게 먼저 반한 거예요. 오순화 선생님이 외면적으로 너무 멋있었거든요. 비올라를 연주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목소리 톤이 대체로 낮은 편인데 목소리도 너무 그윽했고요. 그래서 당시 특별히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고 무작정 비올라를 시작했어요. 그 사람이 좋으니까 이 악기를 열심히 하면 저 역시 아름다워지고 성격도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죠. 까르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학교 출신인 이한나는 2004년 금호영아티스트 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뒤 금호아트홀 라이징스타 시리즈 (2009년), 금호 아티스트 시리즈(2011년) 등에 발탁돼 독주회를 열었다. 2007년 오사카 국제 콩쿠르 2위, 2009년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협주곡 콩쿠르 우승 등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코리안 심포니,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심포니, 프랑크푸르트라인마인 청소년 필과 협연했으며 라비니아, 베르비에, 말보로 페스티벌 등 유명한 국제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2012년에는 '크론베르크체임버 뮤직 커넥트' 프로그램에서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스티븐 이설리스와 협연했다. 커티스 음악원과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로베르토 디아즈 및 킴 카쉬카시안,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는 노부코 이마이를 사사했다. 현재 한예종, 연세대 등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활약에도 그런데 평창과는 이번에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날 공연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축제로 발돋움한 '대관령 평창 음악제'의 겨울 버전인 '2017 평창 겨울음악제'의 하나였는데 이한나는 이들 페스티벌을 통틀어 이번에 처음 출연했다.
"스승님들이 오셔서 연주를 들으러 온 것 빼고는 처음이에요. 해외 페스티벌과 캠프를 많이 다녔는데 재즈와 함께 클래식을 들려주는 이런 축제는 정말 보기 드물어요. 이런 아름다운 환경에서 여름과 겨울에 음악을 즐긴다는 건 축복이죠."
이날처럼 또래의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 "규연이는 저랑 워낙 친한 동갑내기 친구인데 서로 바빠 잠깐씩만 보다 이번에 제대로 보게 됐죠. 지영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뭐든지 잘 받아들이는 굉장한 친구에요. 이상은 유명하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처음 봤어요. 하지만 연주하면서, 그에게 기댈 만큼 든든했고 안심이 됐어요."
무슨 말이든 시원하고 쾌활하게 답하는 이한나는 연주자로서 슬럼프 역시 두렵지만 그것에 얽매이려고 하지 않는 '쿨'함도 지녔다. "물론 힘든 시간을 보재기는 했지만 힘든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연주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음악 친구를 갑작스럽게 잃었을 때다. 그와 같이 연주한 곡들이 생각나 한동안 이한나는 공연장을 찾지 못했다. 음악의 잔인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위로를 준 것 역시 음악이었다. "빈 필하모닉(빈필)의 브람스 4번이 너무 듣고 싶어서 힘겹게 공연장을 찾았는데 엄청 울었어요. 그런데 울기만 한 것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슬픔이 희망의 밝은 부분으로 바뀌는 걸 느꼈죠. 이런 말 유치할 수 있지만, 음악으로 위안을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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