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미연애학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TV 드라마에도 인용되었던 유명한 시구인데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시인의 정신력은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우리는 흔히‘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하고, ‘사랑으로 인한 상처는 사랑으로 극복하라’고들 하죠. 하지만 이런 말하는 사람들이‘정말 사랑을 해봤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랑에 실패하면 다시 상처받을까봐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E씨가 딱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습니다.
짧다면 짧았을 수도 있는 6개월 동안 그를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버스로 왕복 8시간 걸리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바쁘면 기꺼이 그녀가 달려갈 정도로요. 이직을 고민 중이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주변에서는“네가 뭐가 아쉬워서 다 주는 사랑을 하느냐?”고도 했지만, 그녀는 다 포용하고 받아들일 결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이별통보를 해왔다고 하네요. 그것도 달랑 문자로.“누구를 만나기에 부족하다.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내가 못나서 그런다. 좋은 사람 만나기를.”직접 말할 면목이 없다는데, 따져봤자 뭐하나 싶어 그녀도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한 남자에게 정말 헌신했던 6개월의 대가는 정말 혹독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온몸에 열이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친구들은 화병이라고 했다는군요. 그렇게 크게 데이고 나서 그녀는 ‘다시는 올인하지 않는다’고 결심했고, 그런 의지가 강했는지 그 후로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기가 어려웠고, 그렇게 3년째 보내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상처받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건 정말 독하거나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예요. 근데 저는 독하지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네요. 아직은요.”
사랑의 상처를 안고 있는 분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사랑하고 있을까요?
여성1: 맘에 드는 분과 잘 만나고 있는데,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이러다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 불안하다. 은연 중에 상처받을까봐 맘 안 주고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 한없이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잘 만나고 있다가 달콤한 말만 남기고 가버린 남자들이 생각나서.
남성1: 상처도 내성이 생기는가 보다. 몇 년 전 헤어질 때는 그 여자 아니면 죽을 것 같아 몇 개월을 고생했는데, 지금 그때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때의 충격보다는 확실히 덜하다. 아마 그녀를 덜 사랑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상처받은 나를 먼저 감싸게 된다.
여성2: 두 달 가량 만난 사람이 있는데, 결혼 얘기도 오고가고 깊은 얘기도 많이 했는데, 우리 둘 다 서로 감정이 커지려 할 때쯤 더 깊이 좋아하게 되면 나중에 내가 받을 상처가 너무 크겠구나 싶은 마음에 서둘러 정리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후회하고 있다. 이제 내게 어떤 인연이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용기 내서 만나보려고 한다.
남성2: 여친과 헤어진 후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는데, 자신감이 상승되는 게 아니라 자꾸 뒷걸음치게 된다.
여성3: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상처받은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남성3: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 같다. 그것은 나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니까.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상처가 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서 그렇구나, 넘기면 그건 더 이상 상처가 아니고 경험이 된다고 생각한다.
약하게 태어난 아이가 있는 제 친구는 청결에 유난을 떱니다. 아이가 뭐 하나만 만져도 손소독제로 닦는 건 보통이고, 아이 장난감을 1주에 2번 이상 소독할 정도입니다. 보다 못한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킬 거야?”그렇잖아요, 적당하게 균도 접해야 몸이 저항력을 기를 수 있는 거지, 피하려고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죠.
사랑도 그런 거 같아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내 몸과 마음을 불사르는 건데, 상처가 왜 안나겠어요? 문제는 그것이 마음의 상처라는 거죠. 자기 방어를 하게 되면 스스로를 사랑으로부터 격리된 무균실에 가두는 것입니다. 상처는 더 이상 없겠지만, 아팠던 기억을 이겨낼 저항력은 생기지 않아서 그 기억 속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새로운 사랑도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