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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권 연극 네트워크 연결 노력”..
사회

“아시아권 연극 네트워크 연결 노력”

운영자 기자 입력 2015/03/01 14:39 수정 2015.03.01 14:39
일본연극계 대부 류잔지 쇼, 한일수교 50주년에 꾸는 꿈

 '일본 소극장 연극의 대부' 류잔지 쇼(流山兒祥)가 2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연극협회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권 연극의 네트워크 연결을 위해 노력을 하고 싶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코미디극 '의적 지로키치'를 국내 선보이고 있는 극단 류잔지 컴퍼니의 류잔지 쇼(68·流山兒祥) 대표는 27일 "아시아권 네트워크가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의적 지로키치'가 공연 중인 대학로 예술공간SM에서 만난 류잔지 쇼 대표는 "(중화권과 일본을 잇는) 지리적인 위치도 그렇고 정치·문화적인 이유로도 대만, 도쿄, 중국의 연극계 사람들이 서울에 모였으면 좋겠다. 이곳 대학로는 100여 개 극장이 모여 있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고 했다.
2003년 '수원화성국제연극제' 이후 1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류잔지 교 대표는 1982년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 소극장에서 열린 '한일교류 페스티벌'에서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오태석 극단 목화 대표, 이윤택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등 국내 연극계의 거장들과 친분을 맺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날 '의적 지로키치' 개막 공연은 손진책 전 감독 등이 지켜보기도 했다.
1991년 한국에서 '류잔지 멕베드'를 선보이기도 한 그는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사람의 교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극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다.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 사고나 문제가 생겨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대 예술가들의 시각이 덧대져야 한다."
류잔지 쇼가 연출한 '의적 지로키치'는 그의 이런 가치관을 충분히 대변한다. 일본판 홍길동으로 알려진 코믹 액션 활극으로 일본 에도 시대(1603~1868) 말기에 실존했던 의적 지로키치(1797~1832)를 모티브로 했다.
일본 가부키의 거장 가와타케 모쿠아미의 8시간 넘는 원작 '지로키치'를 현대에 맞게 각색했다. 리듬감과 역동성을 살려 1시간40분으로 압축했다.
지로키치는 당시 사회에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26세에 집을 나와 도둑으로 살다가 1832년 36살의 나이로 처형됐다. 그가 10년간 훔친 금은 1만2000량(약 50억 원)에 달한다. 금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부잣집을 전문적으로 훔쳐 민중에서 나눠주던 그를 당시 '의적'이라 불렀다.
노년층은 물론 최근 일본 인기 아이돌이 대거 소속된 연예기획사 '자니스'가 다룰 정도로 젊은 층까지 다 아는 일본의 국민적인 인물이다.
류잔지 쇼의 '의적 지로키치'는 2년 전 일본 초연 당시 현대의 불합리한 상황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연극으로 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반응을 얻었다.
"에도 시대처럼 현대에도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 있다. 서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희망을 품고 있는지 연극을 통해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으로 만들었다."
'뮤지컬 약'을 먹으면 뮤지컬배우처럼 노래하는 설정 등 일본 특유의 만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하다. 스펙터클함을 소극장에 특화된 인형극,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요약한 압축미도 있다. 지난 30여 년간 소극장 운동에 매진해온 일본 소극장 연극의 대부다웠다. 표방하는 장르인 코믹 액션 활극처럼 내내 활기가 넘치고 유쾌하다. 하지만 막판에 지로키치를 중심으로 한 애틋한 가족애는 마침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감동을 안긴다.
"에도시대에도, 4년 전에도 큰 지진이 있었다. 이런 사회적인 아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가족애를 그리고 싶었고 '의적 지로키치'가 맞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일본 에도 시대에 민중이 만든 춤·노래·연극이 혼합된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종합예술인 '가부키(歌舞伎)'를 존중하고 빌린 것 역시 이러한 신념의 연장 선상이다. "서민들의 작품으로 서민들의 가족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45세 이상의 어른들을 위해 극단 라쿠주쿠, 평균 연령 82세의 고연령 극단 파라다이스 좌를 운영하며 '시니어 연극 붐'을 조성한 것 역시 평소 그의 생각이 표출된 사례다.
첫날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부분은 한국어 대사가 곳곳에 삽입됐다는 점이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제목이 대사로 차용되기도 했다.
인터뷰 도중 조용필이 일본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80년대를 떠오르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한국어로 흥얼거리기도 한 류잔지 쇼는 "한국에서 공연하니 한국 관객을 위해 일부 대사는 한국어로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귀띔했다. "한국 공연 이후 대만에서 바로 공연하는데 그곳에서 일부 대사는 중국어로 한다. 그간 인도네시아, 이란에서 공연했는데 그때도 현지 언어로 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며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작품이 서울이든 뉴욕이든 몬트리올이든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극의 사회적인 역할을 논하며 진지하게 눈을 빛내던 류잔지 쇼는 무대 위에서 사진촬영 때 배우처럼 끼가 발동했다. 그의 장난스러운 동작을 지켜보던 일본 배우·스태프들, 한국 관계자들 사이에 웃음이 '빵빵' 터졌다. 연극적인 유희 속에 문제의식을 놓지 않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윤활유가 자연스레 되는 사람.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연극에는 사회를 바꿀 힘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을 생각하고 민족과 나라를 넘어야만 그런 지점을 표현할 수 있다."
'의적 지로키치' 3월1일까지. 러닝타임 100분. 2만~3만원. 02-765-7500
한편 이번 공연을 초청한 서울연극협회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일본과 연극 교류를 진행한다. '의적 지로키치' 공연 이후 3~4월에는 일본연출자협회와 제2회 한일 신진 우수연출가 교류전을 연다. 한국 극단 창세의 '설해목'과 일본 극단 갈색푸딩의 '춤추는 희곡'이 도쿄와 서울에서 공연한다. 하반기에는 홋카이도 연극재단과의 교류를 통해 양국의 연극을 서로 소개하고 희곡 교환 및 공동작업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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