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현
게으른 듯 빈둥거리다가도
어느새 저만큼 달아나는 너
언제나 나보다 한 발 앞선 미운 너
봄보다 빠르고 나보다 더 빠르다
기댈 만한 곳은 벌써 눈앞인데
나날의 비탈은 숨이 가빠 오고
이곳저곳 빠짐없이 들르고는
휑하니 사라지는 못된 버릇
털썩 주저앉아 한번 뒤돌아본다
50년을 달려와도 언제나 빈털터리
낡은 책장 책꽂이엔 초라한 몰골의
모서리 해진 시편들뿐
불혹을 넘고서야 겨우 보이는 너
잡으려 애쓸수록 길길이 달아나는 너
저만치 보내고 가만히 귀기울이면
힐끗 돌아보며 손 흔들며 비웃고 간다.